철학적 가설과 과학적 증명
1. 철학적 가설
부조리한 세상 속에 내던져진 인간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은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최근까지 삶의 의미를 찾은 것으로 보였던 것은 실존주의자들이었다.
괴테는 '유령이 나오든 말든 자기의 길을 가라.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괴로움도 행복도 만날테지' 라고 외치는 파우스트를 앞세워 삶의 의미란 그러한 용기와 신념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고, 조금 뒤 샤르트르는 '앙가주망'이라는 사회참여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삶의 의미란 카뮈식의 '반항'이나 사르트르식의 '앙가주망'을 통해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조차도 실존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앙가주망' 을 실현한 동시에 '용기와 신념'에 따라 행동한 꼴이 된 것이다. 실존주의자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긴 선택의 자유가 사실은 저주받은 자유에 불과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동시에 실존은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는 하였지만 가치 있게 만들진 못하였다.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삶의 무의미성을 깨닫고 삶에 반항하기 위한 살인을 저지른다. 그는 삶에서 무언가 의미가 있다는 환상도, 내일이 달라지리라는 희망도 품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실존주의적 인간이다. 뫼르소는 무의미가 반복되는 삶을 용감하게 내던진 용사이자, 삶에서 자신을 해방시킨 지도자이자, 인생의 무의미함을 알아차린 현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맞이한 죽음으로 대변되는 삶의 선택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시선에 지배'당하지도 말아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선택'에만 의존해서도 안된다면 우리는 도대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재미있게도 삶의 의미에 대한 가설은 거꾸로 실존주의의 문을 연 키르케고르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실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삶의 의미란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 것이자 동시에 신과 관계를 맺는 것 /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을 알고 순응하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잠시 기독교적인 시각을 접어 두고 신의 의미를 조금 넓게 해석해 보자. 신이란 절대적인 가치로 최고의 지혜, 최고의 영원성, 최고의 진정성, 최고의 선과 같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들의 정점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란 절대적인 가치를 신과 같이 받아들이며 추구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가설은 바로 이것이다.
철학적 가설 : 우리는 삶의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고 행동할 때 그에 상응하는 기쁨과 대가를 받을 수 있다.
2. 과학적 증명
가치 있는 일은 삶의 의미를 찾아주며 상응하는 기쁨을 준다는 가설. 틀린 것 같진 않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진 않다. 철학은 삶의 의미에 대한 좋은 가설을 만들어 주었고 가설을 증명하는 것은 과학의 차례이다.
1996년,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인 자코모 리촐라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거울 신경세포'가 상대방의 행동이나 생각, 감정을 마치 자기의 것처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인간의 윤리적 규범이 모든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거울 신경세포가 맡고 있는 정서적 공명 때문이다. 윤리와 도덕 때문에 인간이 공감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공감능력이 있기 때문에 윤리와 도덕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과학적 증명 : 인간은 거울 신경세포의 존재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도울 때 스스로가 행복을 느낀다.
이 것이 우리의 삶을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세상의 고통을 줄이고 기쁨을 늘리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과학의 대답이다.
3. 삶의 의미 - 공공선이라는 절대적 가치추구
개인주의는 자아실현이라는 이상을 전파하였지만 그 결과 사람들은 성취에 동반하는 부담감 때문에 더 행복해지지는 못했다. 우리가 진정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모두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가치 있는 일을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걱정하지 말자. 예수, 공자, 석자 모두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일에 최선을 다한 백수였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면 바로 그 것이 우리의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결론에서 우리는 종교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관계가 단절된 사막과 같은 사회에서 대자존재로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며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매커니즘' 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것이 바로 종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