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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bedobedo Feb 07. 2016

마취 사회

생각을 멈춘 사람들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에서 유체의 '가벼움'과 '무게 없음'에서 연상되는 이동성과 무일관성을 바탕으로 근대사회를 '유동하는  근대'라고 하였다. 하지만 가치의 유동성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가치의 붕괴 현장은 새로운 가치의 실험 현장이 될 테니까.


주의해야 것은 가치의 유동성이 아니다. 우리가 주의하고  무서워해야 할 것은 가치의 유동성을 느끼거나 고민하지 않게 된 마취된 사회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정의하자면 잘 알려진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집도, 차도, 자식들도  문제없이 크고 있는 '안정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안정적인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승진하는 법, 일을 잘 하는 법,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는 법에 대한 자기계발 서적들은 21세기의 성경이 되어 책장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노동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있는가? 노동은 정말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자신을 실현시켜줄 수 있을까? 니체는 일찍이  '여명'을 통해 노동은 대중의 안정제라고 선언한 바 있다.


"... 노동은 신경의 힘을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소모시켜 성찰, 명상, 몽상, 심려, 사랑과 증오를 하지 못하게 가로막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잘것없는 목표만을 보여주고 안이하고 규정된 만족만을 보장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영원히 힘들게 일하는 사회에서는 충분한 안전이 주어진다. 오늘날 사람들은 안전을 최고의 신성처럼 경배한다."


안전에 대한 경배,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말이 아닐까. 노동의 과대평가는 공공의 안전이라는 강박관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면의 혼돈으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노동은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취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취제가 노동뿐인 것은 아니다. - 그러면 다행일 지도 모른다- 적어도 5분 이상의 생각을 언제 했는지 생각해보자. 아마 5분 이상 TV를 보고 스마트폰을 보고 술을 마신 것은 당장에 기억할 수 있어도 5분 이상을 온전히 생각해 본 것을 생각하는 것에만 5분이 걸릴 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 모든 것들 - 무한도전, 네이버, 롤, 스타크래프트 등 - 은 결코 체험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장려하거나 삶의 강렬함을 촉구하지 않는다. 대신 잠시라도 삶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삶을 마취시킨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욕구가 아닌 두려움이다. 니체의 말대로 '삶의 모든 굴곡과 대패로 깎아버려 인간을 모두 똑같은 모래로 만들어 버리는 세상' 속에서 강물에 뒹구는 단 하나의 자갈이  되기보다는 바닷가에 영원히 펼쳐진 모래알이 되어야 비로소 안심하는, 마취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왜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삶에서 가장 바람직하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우연들과 고통들과 행복을 희생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고통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권태, 만성적인 불만족이란 건강할 때만 허용되는 사치이다.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라면 세상의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감사하게 되고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열정을 갖게 된다. 언제나 볼 수 있는 햇살은 행운으로 느껴질 것이며 호흡은 즐거움이 된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만 생에 대한 감사를 배울 수 있다. 마치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듯이 말이다.


당신의 삶을 할퀸 흔적을 너무 비관하거나 자책하진 말자.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당신을 강하게  한다'는 이제는 식상해진 니체의 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고통에 잠식되지만 않는다면 그 고통은 당신의 삶을 불태우는 원동력이 되며 성장의 씨앗이 된다.


우리는 복수가 없는 영화, 고난이 없는 주인공, 헤어짐이 없는 '마취된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


분노에 저항하고 고통을 극복하고 이별을 감수하며 미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 이 것이 삶의 즐거움이며 그 과정에서 어쩌면 행복이란 것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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