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책한권
소록도에 가본 적이 있다. 대학교 2학년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친한 친구와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났던 것 같다. 전라남도 고흥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그곳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 선착장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 소록도 마을까지 갔다. 소록도 섬의 내부는 울창한 소나무들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해변으로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3박4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던 것은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사람이 살지 않은 것처럼 고요했던 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더욱 심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당시만해도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노인들만 남아 있었다. 그런 어렴풋한 느낌이 소록도에 대한 모든 것이었는데, 때마침 집어든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 이라는 소설은 소록도를 배경으로 소록도의 역사 (비록 많은 부분이 픽션이지만) 를 다루고 있어서 짐짓 반가운 기분에 한달음에 읽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소설은 소록도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소설에서 조백헌이라는 소록도의 신임원장, 황장로라는 소록도의 정신적 지주, 그리고 사무과장 이상욱이라는 주요 인물이 등장하는 가운데 조원장이 주도로 이루어지는 소록도민의 간척사업의 실행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 이해관계, 주인공의 자아의 성장에 대해서 다룬다.
크게 보면 이 소설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세가지인바 첫째 신임원장과 소록도민의 갈등, 두번째는 간척사업을 둘러싸고 신임원장을 포함한 소록도민과 간척지 주변 마을의 갈등, 세번째는 신임원장 내적자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다.
이 책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바, 첫번째의 갈등에서 던지는 물음은 지배-피지배자 사이에서 지배자는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하는 지 알려주며 과연 진심으로 타인을 위하는 것도 자신의 이기적인 동기에게 비롯된 것은 아닌지 묻고 있으며 사랑-자유는 과연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두번째의 갈등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 되풀이되온 역사는 결코 변하지 않으며 인간소외와 이기적인 습성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선을 취하고 있다.
세번째의 갈등, 즉 조원장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내적갈등을 다루고 있었다. 조원장 역시 소록도민들이 말하듯이 소록도의 참혹했던 그간 역사에 비추어 소록도에 다시한번 우상을 세우는 일은 없어야한다고 다짐을 하나, 조원장 스스로 간척지 매립사업을 진행하면서 "화려한 퇴장"을 무의식에 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홀연히 전임식 이틀전에 조용히 섬을 떠난다.
물론 이 과정속에서 끊임없이 그가 올바른 리더인가를 자각하게 하는 것은 황장로와 사무과장 이상욱이다. 황장로는 소록도의 살아있는 증인이라고 할 정도로 소록도의 지난 역사를 들려주며 조원장으로 하여금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말해주는 사람이라면, 이상욱은 조원장의 또 다른 자아처럼 미래의 소록도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즉 그것이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이 되기 위해서 어때야하는지를 객관적으로 모색하도록 도와준다.
결국 조원장은 외압에 의해서 소록도의 원장의 지위에서 내려와 다른곳으로 전임을 가게 되지만, 7년후 조원장을 원장의 자리가 아닌 일반인으로 소록도로 되돌아가게 하는것은 상욱의 편지이다. 그 편지안에는 조원장이 끊임없이 고민했던 소록도를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가에 대한 고민에 대한 실마리가 들어있었고 조원장은 다시 섬에 돌아온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참다운 사랑이란 일방이 일방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그 공동의 이익을 수확하는 데서만 가능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곧 그가 그 천국을 꾸미더라도 그것을 꾸미고 나서 그 천국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되지요. 아닌게 아니라 거기서는 진실한 믿음이 생길 수가 없는 것이지요." p.412
조원장이 스스로 이 섬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섬은 천국이 될 수가 없으며, 비로소 그가 섬의 일원이 되어 자신이 떠나지 않아야 진실한 마음이 생기고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다는 것. 아주 소소한 진리일 수도 있으나 대한민국을 스스로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리더들은 한번씩 생각해볼 문구 일만 하다.
픽션은 픽션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 소설의 출발점이 고 이규태 기자의 칼럼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알기에 소설을 읽고 난 후 "오마도 간척사업", "소록도 조원장"에 대해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간척사업 공정이 80~90%가 끝났을 무렵,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돌연 간척지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모두 내쫓았으며 그 이후 2000년대에 들어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이들 한센병환자들의 보상청구소송을 계획중이라는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지만, 이러한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을 방법이 없을까. 대한민국이 <우리들의 천국>이 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심오한 사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조원장 처럼 한번만 자신을 돌아보아도 훨씬 이 사회가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