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변호사의 서울시내 미술관 기행
12월 셋째주부터 매주 한차례씩 서울시내의 미술관을 염성순 화가님과 그리고 또 다른 동료 변호사 한분과 찾아가기로 했다.
그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작가님께서 꼭 보아야 한다고 하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2016.11.4.부터 2017.3.1.까지 열고 있는 유영국전이다.
많은 분들이 유영국이라는 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작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다음으로 대체한다.
"유영국은 1916년 경상북도 울진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1930년대 세계에서 가장 모던한 도시 중 하나였던 도쿄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1943년 태평양전쟁의 포화속에서 귀곡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어부로, 양조장 주인으로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5년 이후 서울에서 본격적인 미술활동을 재개,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신상회 등 한국의 가장 전위적인 미술단체를 이끌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 받았다.(후략)" - 유영국에 대한 소개말 중
유영국 절대와 자유 전시전에서는 총 4개의 시대로 나누어 그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게 해두었다.
제1-1전시실 1916-1943 도쿄 모던
초기 유영국의 작품은 종이나 나무조각등을 잘라서 붙이고 이어 만든 형태의 작품들이 많다. 도쿄에서 추상미술의 거장들과 교류하며,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실험적인 작품을 내놓아 당시 한국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리라 추측된다.
제1-2전시실 1943-1959 '추상'을 향하여
유영국은 1943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을때 다시 고향인 울진으로 돌아와 어부의 생활을 시작한다. 단지 미술작품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스스로 바다로 배를 몰고 나아가 고기를 잡고 잡은 고기들을 팔아서 가장으로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또한 아버지 유문종씨로부터 물려받아 직접 운영하던 양조장이 있었고 처음에는 막걸리만 만들어 팔다가 뒤에는 소주도 만들어 판매했는데 소주 이름이 ‘망향(望鄕)’이었다. 고향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기의 그의 작품들은 고향 울진의 산과 바다를 점과 선 그리고 강렬한 색채로 채운 면으로 추상화된 모습으로 그렸으며 얼핏 그의 그림들은 서양의 추상화가인 몬드리안, 피카소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짐작되는 작품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자신의 눈에 보이는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장소를 대상으로 하여 그림을 그렸고 그렇게 표현된 고향의 산들은 깨끗하고 밝은 색채안에서 항상 따사롭게 보여 그가 고향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생계 속에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그림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항상 자각하고 있으며 그림을 그리는 순간들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강렬한 빨간색과 초록색을 대비하여 쓰는 것을 즐겨하고 아주 선명하게 표현된 빨간색은 심지어 형광색으로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사진으로 그 느낌을 모두 전달할 수 없어 안타깝다.
제2전시실 1960-1964 장엄한 자연과의 만남
이 시기의 유영국이 그린 산들은 더욱 장엄하고 깊어진다. 마치 산들은 움직이는 것처럼 시뻘건 태양과 뒤섞이고 춤을 추는 듯이 하늘까지 손을 뻗어댄다.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품 안에서 그림이야 말로 우리의 내면을 잘 표현하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변호사들도 제각기 서면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꼼꼼한 변호사의 서면을 읽어보면 하나하나 곰씹듯이 한글자 꾹꾹 내려쓴 느낌이 들고 어느 활달한 변호사의 서면은 에너지가 넘치고 글에도 힘이 있다. 인간이 가진 에너지는 이렇듯 글이나 그림을 통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을 그대로 반영한다. 신기한 일이다.
제3전시실 1965-1973 조형실험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도 제4전시실에 들어섰을때 윤영국의 예술 세계가 종교적이며 영적인것을 지향해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그린 산들은 가장 단순한 삼각형의 형태를 띄고 있었지만 어떤 산들보다 웅장하였다. 그리고 그 산들은 2D 평면에서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고 화면에서 튀어나올것 같았다.
색상들은 더욱 차분해졌으며 산들은 고요하고 천지를 품을 듯이 한없이 깊어졌다. 굵은 검정색 선으로 표현하지 않고 단순한 삼각형과 사각형 그리고 몇개의 가느다란 선만으로도 충분히 화가는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해냈다.
에너지의 절제를 통하여 간결하고 단순한 그림이 되었지만 오히려 완성도는 높아졌고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으로 최고의 정점을 찍었다.
제4전시실 1973-1990 자연과 함께
유영국은 만 61세부터 심장 박동기를 달게 되어 병마와 싸워간다. 그의 투병은 만 86세 즉 2002년까지 8번의 뇌출혈과 37번의 병원생활이 계속된다.
이 시기의 그의 그림은 마치 작은 촛불처럼 소박하고 안정적이며 부드러운 여성성마저 띄어간다.
생에 대한 마지막 염원을 그려가듯 차분한 그의 그림은 이전의 그림들보다는 역동적이지 않으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하고 어떤 면에서는 퇴근후 가벼운 드라마 한편을 보듯이 즐겁기도 하다.
하지만 삶을 위로해주는 것은 이토록 사소하고 정겨운 풍경이라는 것을, 이 위대한 화가는 투병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법조인으로 살아오면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마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에서 몇번하지 않은 송사를 마주하기에 불안해하고 격정적이며 비관적이 된다. 변호사로서 안타까운 의뢰인들을 변호하기 위해 열심히 서면을 쓰고 변론에도 나가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많지 않다는것을 알게 되며 그러한 사람들 사이의 치열한 공방 속에서 홀로 선 변호사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거대한 자연속에서 화가가 보았던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마치 푸르고 거대한 산속에 들어가 한참을 거닐다 나온듯이 신선하고 장쾌하여 잠시나마 거친 사람들간의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유영국전은 머리가 복잡한 도심속에서 깊은 숲속을 걷고 푸르른 바다 그리고 새빨간 태양을 잠시나마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는 전시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