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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김밥 Aug 15. 2019

<엑시트>가 전합니다. '잉여'는 없다고

<엑시트>가 청년들에게

※ 이글에는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엑시트>의 주인공 ‘용남’(조정석 분)은 말 그대로 ‘짠내 나는 청년백수’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용남은 가족들에게도 애물단지다. 귀여운 조카는 친구들 앞에서 용남을 부끄러워하고, 누나는 ‘너는 자랑할 게 없으니 옷이라도 잘 빼입고 (어머니 칠순잔치에) 가야 된다’며 용남을 구박한다. 더 슬픈 것은, 용남도 자기 자신을 ‘구박’한다는 사실이다. ‘먹고 자기만 하고 똥만 싼다’면서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잉여’취급한다. 어머니 칠순잔치에서 노래를 부르며 어울려 놀 때, 어머니를 업고 싶었지만 사위들에게 밀려나며 그 기회를 빼앗기는 용남의 모습은 참 애처롭다.     


다만, 용남은 대학교 시절부터 산악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산악 경험을 쌓았고 산악능력도 뛰어난데, 도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용남의 누나는, ‘많은 것들 중 왜 하필 도움도 안 되는 산악동아리를 했냐’며 또 용남을 구박한다. 용남은 정말 이 사회의 ‘잉여’일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별 상관없는?     


용남(조정석 분)은 정말 이 사회의 '잉여'일까? <엑시트>의 한장면. ⓒ CJ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알 수 없는 연기가 세상을 뒤덮으면서 재난을 맞게 되고, 용남의 ‘도움도 안 되는’ 산악부 경험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부상당한 누나를 위해, 주변 물건들로 들것을 척척 만들어내는가 하면, 위기상황 속 목숨을 건 클라이밍으로 옥상진입에 성공, 가족들을 모두 살려낸다.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장가도 취업도 연애도 실패한 지질한 청년백수 용남이 모두를 살려내는 영웅이 될 줄을! 산악동아리 경험은,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아니었다.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보였을 뿐. 그렇게 용남은 가족들도, 또 한 무리의 학생들도 구해내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다. 

     

잉여인가, 아닌가의 기준은?     


재난상황에서 용남의 활약은 독보적이다. <엑시트>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자, 용남은 ‘잉여’인가. 전혀 아니다. 그런데 왜 주변사람들 모두가, 그리고 용남 자신까지도 스스로를 잉여취급 했을까. 그것은, 거칠게 말하면, 돈이 안 되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분위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돈이 되지 않으면, 밥을 먹여주지 못하면 ‘도움도 안 된다’는 취급을 받기 너무 쉬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군가가 철학서적과 문학서적 등을 탐독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가 아직 취업을 못한 상태라면,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그런 책 말고 도움이 되는 책을 읽으라’는 조언을 들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철학서적과 문학서적은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계열) 전공을 기피하고, 경영학 경제학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경영학, 경제학에 적성이 맞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경영학과 경제학에 진정한 배움의 진수가 들어있다고 생각해서?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영학 경제학이 돈을 벌기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가. 인문학과 경영학의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면서 인문학을 조명할 때도, 그것이 ‘인문학 또한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즉, 경영을 더 잘되게 도와주는 ‘부속품’ 정도의 의미로 한정되었을 뿐이다.    


 


(물론, 경영학과 경제학 등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 경영학과 경제학 또한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다. 다만, 한정된 분야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사회의 편협함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이 있다. ‘문사철’은 과연 돈이 안 되는 학문일까? 수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여러 관점과 장르, 때로는 실험적인 문학작품을 내놓으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면, 문학시장 자체가 다양해진다. 전혀 새로운 시각, 전혀 새로운 유형의 소설이 탄생할 수도 있다. 물론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문학강국 한국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문학강국’을 어떻게 단시간에 만들 수 있으랴. 긴 안목을 보고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기는 하다) 


우리사회는 이렇게, 문학 꿈나무들에게 토익 책과 취업면접 비법 등의 책을 억지로 쥐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잠재력을 갉아먹으면서. 그렇게 미래의 ‘셰익스피어’와 ‘조 앤 롤링’을 떡잎부터 잘라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청난 사회적 낭비다. 

     

하고 싶은 말은     


뭐, 아무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이거다.     

청년 여러분, 기 죽지 마세요. 당신은 잉여가 아니에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런 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도 조금은 고민해주세요.               



※ PS : 그런데, 이 전대미문의 재난에서 <엑시트>한 용남은, 그 이후의 ‘취업절벽’이라는 재난에서도 <엑시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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