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동언니 May 12. 2023

모르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란...

임신 13주차 생각정리

여자로 태어났고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본 경험이 있으니 평생 '주류'에 속해있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임산부라는 신분은 또 다른거 같다. 이렇게 내가 정말 힘들어서 모르는 사람에게 호의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은 처음 겪어봤기 때문이다.


어느날 평상시와 같이 서울에 나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어 뭔가 속이 이상한데?', '어 토할거 같은데?'의 느낌이 점점 심해지다가 눈 앞이 흔들리다가 잘 보이지 않고 식은땀이 계속 나면서 가만히 서있기조차 힘든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감에 시달리다가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비틀거리며 뛰쳐나갔다.


이런 경험이 한번 있다보니 지하철이나 버스 등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교통수단을 타야할 때면 무섭고 긴장된다. 앉을 수만 있으면 괜찮은데 늘 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더욱 그렇다. 그래서 지하철을 탈때면 임산부 뱃지를 달곤 하는데 이건 또 참 민망하다. 



만약 누군가가 너무 감사하게도 자리를 비켜주면 일단 처음에는 너어무 민망하다. 주위 근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나? 하면서 한번씩 쳐다보는 시선들이 부끄럽고, 앉은 뒤에는 뭐라할까... 피해자다움으로 스스로를 제한하는 느낌이랄까. 그냥 앉아서 핸드폰도 하고 책도 읽고 싶은데 왜인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그냥 눈을 감고 잠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알아채주지 않는다면 그 상황이 되게 슬프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할지 내가 알수 없기에 그들 스스로 판단하기에 괜찮은 사람이 나를 위해 배려해주기를, 그 호의를 기대해야 한다는게 나를 좀 비참하게 만든다고 해야할까. 



이런 상황을 겪고나니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소개하는 이동권이라는 개념이 더 확 와닿았다. 이전에는 '국가권력 혹은 누군가가 장애인들이 이동하지 못하도록 온몸을 붙잡고 있거나 방문 앞을 지키는 것은 아니기에, 이동원은 사회복지(장애인복지)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국가가 노력할 수 있으면 하고 못해도 그만인 문제, 돈이 있으면 도와주고 없으면 안 도와줘도 괜찮은 선행이나 복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따라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고 모든 사람이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없는 이상 제공할 의무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성립할 수 있음을 포함한다고 한다. (정당한 편의 제공) 이는 제공할 의무가 기본이 되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이행하지 않는 쪽에서 대야함으로 주체가 이동했다는데 의미가 크다.


내가 감히 장애인들이 긴 시간 동안 겪어왔던 어려움을 겪었다고, 조금이나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상황을 겪게 되어 연계해 떠올리게 된 부분이라 기록해둔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가 살기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