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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동언니 May 06. 2019

동해 묵호항::마음이 답답하고 힘들때는 혼자 떠나자!

여름에 걸쳐 연애, 회사 등에서 힘든 일들이 휘몰아치고 가을쯤 되니 그냥 몸과 마음이 탈진상태가 되었다. 


혼자 마음 달래러 바다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던 중 예전에 가보고 싶어 저장해두었던 동해시 묵호항의 103lab 이 떠올랐고 아래의 기사를 읽으며 더더욱 가보고싶어졌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721441&memberNo=38899012


그러고 갈까 가지말까의 무한 고민을 하던 중 ‘그냥 가자!’라는 결심을 하고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


103lab에 가는 길은 사이트에도 자세히 나와있는데 막상 엄청 기다려서 버스를 타보니 내가 생각한 루트로 가질 않았다. 당황하며 내려서 결국 택시를 타고 갔는데 짐이 많으면 도보로 걷기 좀 부담스러운 높이에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만 놔두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왔다. 103lab 로비에는 근처 맛집과 가볼만한 스팟들을 정리해둔 클리어파일이 있어 쭉쭉 보면서 메뉴를 골랐다. 저녁에는 회를 먹을 예정이기 때문에 점심은 구이전문점에서 생선구이로 결정! 


생선도 짭조롬 고소해서 맛나고 반찬도 정갈하게 잘나와서 진짜 배불리 잘 먹었다.



식사 후에는 동네를 계속 걸었다. 해변으로 쭉 걷다가 논골담길을 걷고, 조금씩 지도를 참고해가며 발길이 가는대로 향했다. 걸을때마다 조금씩 다른 풍경이 나와 사진을 찍으며 걸으니 지겹지 않았다.


논골담길은 엄청난 언덕인데 어업이 활성화됐던 시절에는 그 언덕길을 사람들이 생선이 담긴 물통을 이고지고 올랐다고 한다. 그러니 물이 항상 흐르고 겨울철에는 길이 얼어 난리도 아니었다고. 그래서 장화없이는 못산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확 트인 바다를 향해 나있는 전망대 겸 카페. 저기 장미들은 led 등이 달려있어 밤이 되면 예쁘게 반짝거렸다. 카페에는 사람들이 많아 시끌벅적했지만 카페를 등지고 혼자 바다를 바라보며 바람을 맞으니 세상 근심걱정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여기 카페에서는 느린 우체통에 넣을 수 있는 엽서를 챙겼다. 느린 우체통은 언제부터인가 국내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좀 오글거리고 낯설어서 써보지 않다가 혼자 여행와 시간이 남아도니 갑자기 너무 쓰고 싶어졌다.


이번 여행은 진짜 날씨가 다했다. 햇살, 바람, 온도, 습도까지 모든게 완벽해서 어지간해서는 행복할 수 밖에 없었던 하루였다.


우리나라 어촌 마을만이 갖고 있는 이런 풍경을 너무 좋아한다. 바다색은 어딜 가나 비슷하지만(물론, 어느 바다이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파란색을 띄지만) 우리만의 지붕 모양, 옥상색  등이 지닌 정겨움 사랑해요..


여기저기 휙휙 걸어다니다가 지친 나는 눈에 불을켜고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몇군데 봐두긴 했는데 길이 헷갈려 눈에 바로 띈 카페 블루오션으로 들어갔다. 엄청 감각적이고 뭐 그렇다기보다는 사람이 없고 바다가 잘 보여서 선택했다. 멍때리고 바다를 바라보고 다른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다가 바로 옆에 인생네컷 기계가 있길래 혼자 찰칵찰칵.



인생네컷...한번도 혼자 찍어보리라 생각 못했고 심지어 친구들이랑도 술 취해서만 찍어봤는데 나름 재밌었다. 셀카고자라 혼자 여행가면 친절한 누군가가 찍어주지 않는한 사진이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남으니 좋았다. 부스 안에 혼자 들어갔다 나오는 과정이 조금 민망했지만ㅎㅎ


사진까지 찍고나니 약간 체력이 바닥난 나는 숙소로 되돌아갔다. 낮잠 한번 때리고 저녁을 더 맛나게 먹기 위한 빅픽쳐!



각자 사용할 수 있는 칸이 분리되어 있고 그 안에 스위치와 콘센트 등이 불편하지 않게 모두 구비되어 있어 진짜 좋았다!


103lab은 친구들과 와도 좋겠지만 혼자 조용히 와서 지내다가기 최고인 장소다. 묵호항이 워낙 작은 동네다보니 욕심 없이 돌아다니며 카페에서 책읽고 바다보고 사색하고 낮잠도 자고 그러기에 딱! 내부 인테리어도 정말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 마음까지 차분하고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아름다워..ㅠㅠ

해질 무렵에 일어나 인근에 있는 활어판매센터로 고고. 횟집으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게스트하우스 로비에서 예능을 보면서 조용히 먹고 싶어서 여길로 골랐다. 돌아다니며 요새 맛있는 어종을 추천해달라 했더니 복어를 추천해주셨다. 복어 한마리와 오징어 몇마리해서 이만얼마에 구입했다. 구입하면 회로 썰어주는 할머니들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주신다.


오징어는 천원, 복어는 삼천원 뭐 이런식으로 책정이 되어 있던데 바라보면서 음... 그냥 우리가 너무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업무에 대해서 그 값어치를 안해준다는 생각을 또 했고 할머니가 지쳐보이셨고 그래서 만원을 드렸다. 이런 행동들이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냥 이래야 마음이 편하다.


회콜 회콜~ 초고추장이랑 간장 셋트는 활어판매센터 맞은편 슈퍼에서 구매했다. 복어회는 처음 먹어보는거라서 진짜 먹어도되냐고 먹고 죽으면 어떡하냐고 회 사면서 계속 질문했는데 절대 아니라고 하셔서 믿고 먹어봤다. 맛은 잘 모르겠구 '회는 여러 사람들이랑 먹어야 맛있는 음식이구나'라는 혼자만의 진리를 터득했다. 그리고 콜라는 너무 달아서 그런지 회랑 안어울리네...역시 소주랑 짱이지만 혼자 낯선 동네에서 홀짝거리다가 취해서 실수할까봐 자제했다.


내 최애 예능이던 나혼자산다를 보며 식사를 마무리하고 일년 후 나에게 엽서를 썼다. 이때 구구절절 별의별 얘기 다 썼는데 이제 받아보면 나 이불킥할듯...


느린 우체통이든 타임 캡슐이든 아예 나중에 기억 못할 먼 미래, 최소 5년 후면 쓸만할텐데 이렇게 1년, 3년 후면 뭐라고 썼는지가 다 기억나서 진짜 받아볼 생각만 해도 손발이 쪼그라들 것 같은 기분이다. 전혀 기대되지가 않아요...


근데 이 무렵 풍경이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웠다. 회 사들고 숙소로 가는데 한 발자국 올라갈때마다 감탄하면서 멈추다보니 비슷한 사진을 수십장 찍고 시간도 배로 걸렸다. 그래도 너무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건질 수 있었다. 볼때마다 저 날의 공기와 내 기분이 기억나서 아직도 프사 배경으로 해놓고 있다.


그렇게 로비에서 혼자 시간을 좀 보내다 내가 신청했던 캐쥬얼 다이닝에 참여했다. 사실 여기에 오고싶다는 생각을 딱했던 이유가 이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예전에 한동안 공유공간, 공유 프로그램 등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엮어줄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찾아보던 중 이걸 알게 되었고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 낯선 장소에서 모여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게 참 낭만적이고 좋아보였다. 그리고 막 술을 마시거나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역시나 나도 오히려 낯선 사람들이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게 되었고 나름 마음이 편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정말 서로를 아는 상태에서 해줄수 있는 조언이나 격언은 아니라 좀 공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느낌의 자리가 워낙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하고 신선했다. 그리고 얘기를 하다 우리 회사 근처에서 일하는 분들도 알게되어 아직까지도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서로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잠들기 전 함께 동네를 한번 더 산책했다. 어두컴컴한 밤에도 매력이 넘치는 묵호항,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계속 지칠때마다 생각나는 곳이다.


근데 103lab의 주인장이 5월 1일부로 바뀌었다고 한다.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눈건 아니지만, 촛불을 켜고 개인적인 얘기들을 나눴던 기억이 주는 심리적 유대감 때문인지 다시 가도 그곳에 안계실 생각을 하니 기분이 뭔가 이상하다...

https://m.blog.naver.com/103lab_/22150318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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