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오랜 시절동안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원하는 직장의 모습이나 배우자 상, 노년의 생활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들 속에서도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그렇게 이상적인 미래는 그리지 없아"라는 식의 발언을 했던게 기억난다. 내가 이런 성향을 갖게 된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재수'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일년간의 수능 재수생활을 하며 나는 정말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친구를 사귀고 정을 나누면 혹시 감정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순간들이 있을까봐 일부러 멀리했고 기억을 미화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하루도 뿌듯하지 않게 넘어간 적이 없다. 최선을 다했고, 수능을 보러 가는 날에는 '할만큼 했으니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교시인 언어영역 시간에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을 겪었고, 원래부터 취약 과목이었던지라 큰 영향을 받았고, 페이스가 말렸다. 결국 일년 동안 내가 목표로 하며 그렸던 대학생활은 닿을 수 없는 한낮 꿈이 되어버렸고 이렇게 상상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마음만 힘들게 하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뒤로 인생의 모든 과정을 그저 물흐르는 대로 두고 나의 인생이지만 관망의 태도를 지닌채 살아왔다.
물론 이러한 삶의 태도가 바람직할까에 대한 의구심은 여러번 가졌지만 결정적으로 변해야겠다는 다짐을 한건 트윗 때문이었다. '내 삶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으면 남들의 상상에 그저 참여하게 된다'는 식의 내용이었는데 처음에는 그저 수많은 자기계발식의 멘트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 트윗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 비슷한 추가 발언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얼 놓쳤을까 등에 대한 수많은 상념이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그러한 상념의 시간을 거치고 나니 '아 과거는 모르겠고 앞으로라도 좀 방향성을 갖고 살아봐야겠다'는 생산적이라 해야 하나 자포자기라 해야 하나 무튼 그런 다짐을 하게 되었고 요새는 아주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들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족관계 속에서 나의 모습, 커리어 측면에서 나의 모습 등 두루뭉술하게가 아니라 하나의 구체적인 장면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하나 역으로 고민하고 있다.
조승연 작가는 본인의 꿈이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 꿈이 클리쉐하고 허무맹랑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본인은 이러한 꿈이 있기 때문에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어떤 것이 더 자유로운 삶에 부합하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했다. 정말이지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좋아보이는 수많은 옵션이 있고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없을 수는 없을텐데 이러한 기준만 있다면 선택을 할 때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후회가 드는 순간이 와도 '그래 당시 나는 이런 삶을 지향했기 때문에 이게 최선이었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매몰되어 있는 이 생각 또한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먼 미래에 보면 그저 철없는 32살짜리의 순진하기 그지없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과거의 나에 대해 갖는 수많은 후회처럼) 하지만 이렇게 기록을 남겨놓음으로써 미래의 나에게 해명하고 증인이 되어주고자 한다. 이 모든 생각과 판단과 선택이 나름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였으니 너무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