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차 백수 경력에 접어들면서 생각과 일상
"번아웃된 것 같아요. 일도 재미없고 너무 힘들어요. 3개월 정도 쉬고 싶어요."
이 말을 팀장에게 꺼내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팀장은 매년 진급 가능성 100%라는 희망고문과 내가 그만두면 자신도 그만둘 거라는 의리(?) 같은 모습으로
나를 회사에 붙잡아 놓았고, 나 역시 그에 상당한 업무 강도와 수준에 맞추어 일하며 내 몸을 혹사시켰다.
언제부턴가 '난 그냥 일하는 도구인가? 도구이다. 도구 임이 확실하다'라는 생각이 꼬리에 물고 내 머리를 가득 찼을 때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잘하던 발표와 교육을 할 때면 숨이 가쁜 듯 말하며 손을 덜덜 떨었다.
2018년 6월, 오후 3시 정도 되었을까?
귀에서 주문을 외우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고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식은땀이 흐른다.
이 증세는 약 1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매일 같은 증세가 같은 시간에 발현을 하자 오후 3시에는 회의나 발표 같이 사람들과 같이 있는 일정을 잡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번의 고민 끝에 회사 근처의 정신과를 찾았다.
약 2시간의 검사 결과, 자율신경계는 정상이라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라고 의사는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병명은 '불안 장애'... 그에 따른 처방약...
그리고 증상의 모든 원인은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장애라는 것이 밝혀졌다.
남편 몰래 몇 차례 병원을 찾아 상담하고 약을 처방받았으나 의사는 보호자가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그 날밤 남편에게 너무 힘겹게 말을 꺼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요. 이번 주말 같이 병원에 가요.'라며 부드럽게 받아주었고 그 말에 난 몇 시간을 남편 품에서 계속 울었다.
한 번은 주방에서 설거지하다 과호흡이 와서 싱크대를 부여잡고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진 적도 있었고 해외 출장 중 점심시간에 심박수가 180 bpm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백혈구 수치는 떨어졌고 평소 심박수는 50~60 bpm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회사에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면역체계가 무너져 매주 병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그저 신체적 병으로 팀장에게 말할 뿐이었다.
면역체계와 불안장애 증상들이 회복되기 시작할 때쯤 이 직장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디에서 일하나 나의 업무 성질이나 성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구나.라는 깨달음도 있었으나 여기에 계속 다니다가는 계속 이용만 당하다가 나중에 버려지겠다는 확신이 너무 컸기 때문에 퇴사를 결정한 것이다.
퇴사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
쉬고 싶다는 말에 팀장은 "이번 진급에서 떨어져서 그러냐. 내년에는 진짜 진급된다."라는 말만 되풀이했고
쉬고 싶다는 말에 본부장은 "쉬는데 1 달이면 충분하니 1달만 쉬고 영국으로 3개월 간 출장 가서 일하세요"라는 말만 했다.
참고로 난 6년 차 유부녀이고 회사의 영국법인은 그야말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불모지 같은 곳이었다. 난 대리 직급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나오는 대리 직급의 생활비로는 영국의 물가를 쫒아가기 힘들고 파견이 아닌 출장으로 가면 생활비는커녕 매일 출장비만 4만 원 정도 나오는 꼴이었다. 게다가 현지 인력이 없으니 꿩 대신 닭이라도 라는 심보임을 난 빤히 알 수 있었다.
팀장, 본부장 누구 하나 정말 쉬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진심으로 물어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불안장애'라는 병명으로 3개월간 병가를 내고 복귀할 수도 있었지만 퇴사 면담에서조차 어떡해서든 인력을 운용하려는 그들의 모습에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나는 6년간 몸 담았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짐을 싸고 회사 건물에서 나오면서 '난 왜 정치적이지 못했을까? 내가 학벌이나 배경이 더 좋았으면 더 편하게 회사를 다녔을까? 왜 항상 따지지 못하고 웃으면서 모든 것을 수용하며 일했을까? 나의 6년은 도대체 어디로 간걸까?'라는 물음들이 내 발걸음을 따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