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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가루인형 Jan 10. 2020

행복의 필수 조건

라디오 DJ의 왈: 행복의 필수 조건은 결핍인 듯합니다.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나 또한 행복을 꿈꾼다.

라디오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나 같은 독박 육아맘들이 보내는 사연이 반이라서 하루 종일 틀어놓는다.

가끔씩 라디오 DJ가 하는 말이나 사연이 공감이 되어 아기를 보면서 모노드라마를 찍듯이 그 사연을 주제로 혼자 대화를 한다. 

라디오 DJ의 말 중에 최근 뇌리에 꽂히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결핍'이다.

'행복의 필수 조건은 결핍인 듯해요.'라며 이어지는 멘트를 들으며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난다.

나의 평일 육아는 진짜 글자 그대로(Literally) 독박 육아이다.

임신 중이었을 때 회사일이 얼마나 고된지 알기에 평일에는 남편은 일에 나는 육아에 충실하자라고 서로 합의를 보았다. (아기 목욕시키는 것만 제외)

남편은 회사에서 현악기 동호회 회장직을 맡고 있고 뭐든 맡으면 최선을 다하는 성격 탓에 19년 연말이 되니 첼로반, 비올라 반, 바이올린반, 현악반 등을 종횡무진하며 음주를 하고 귀가하였다.

취미생활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나의 원칙 때문에 남편은 첼로 레슨도 받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육아를 하는데 취미생활을 온전히 하지 못하고 있네.'라는 억울한 생각이 하필이면 금요일 저녁에 들고 말았다.

그때 내 마음에 커다란 결핍이 생겼다. 그때는 공허함이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결핍이었다.

그날은 남편이 첼로반 송년회가 있는 금요일이기도 했다.

늦게 들어올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술은 엄청 퍼마시지는 않았겠지?'라고 생각했다.

밤 10시가 되었다. 아기는 재웠고 육아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취미가 뭘까 고민해본다.

밤 11시가 되었다.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은 지금 당장 없었다. 어쩌다 가끔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포스팅하는 정도?

밤 12시가 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연락이 없다. 졸린 잠도 싹 사라졌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새벽 1시.. 삐비삐빅.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나 마중 나가지 않았다.

남편은 술에 취해 이리 쿵, 저리 쿵 몸을 가누지 못한다는 것을 예감할 정도로 휘청거리며 집 안을 그리고 방 안을 들어와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바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나의 잠재된 화를 끌어내는데 방아쇠 역할을 하였다.

그 상태로 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4시가 돼서야 간신히 잠을 청했다.

잠들지 못한 그 3시간 동안 남편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아기가 무슨 일 있어서 응급실을 가거나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어쩌려고 이리 술을 많이 마셨지?'

'이럴 바엔 혼자 아기를 키우는 게 나을 거 같아. 이 사람은 아기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거 같아.'

'난 뭐야. 보통의 나였으면 이 시간에 나도 놀고 있었을 텐데.'

'나 왜 이렇게 초라한 거야. 그냥 깨워서 크게 소리치면서 화라도 내!!'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리에 솟구쳐 오르기에 잠이 오지 않았었다.

솔직히 다음날은 토요일에 갑자기 약속 있다 하고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결핍'을 충족할 요건이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그런다고 내가 행복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라는 거였다.

결국 그날의 결핍은 채우지 못했다.

토요일 저녁 남편은 나에게 다가와 '어제는 미안해. 화 많이 났지요?' 라며 말을 꺼냈다.

난 다른 미사여구는 전부 빼고 딱 한마디만 했다.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으니 12시 이전에 술은 마시지 말고 들어와요.'

그리고 지금까지 남편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취미생활이 가능한 것들을 기웃거리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의 발레학원, 스피닝, 필라테스.... 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으니... 계속 어떤 취미생활이 좋을까 고민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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