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이래.
난 천주교인이다. 그럼에도 팔자(八字)를 믿는 편이다.
아니 믿는다.
팔자는 사람이 출생한 연, 월, 일, 시에 해당하는 간지 여덟 글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이 팔자의 좋고 나쁨에 따라 인생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20대까지는 팔자를 믿지 않았다.
가진 게 없어도, 합격했음에도 금전 때문에 가까스로 합격한 대학에 가지 못해도, 좋은 직장(이전 직장 아님)을 때려치웠음에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헌신을 다하면 존버 정신만 있다면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직 반 백세도 살지 않았지만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매일 커가는 아기를 쳐다보면 인생이 자기 의지가 아닌 주어진 화복 생사에 맞추어 돌아간다고 점점 확신한다.
신이 그런 팔자를 주어줬다면 현재 자기 인생에 충분히 만족스러워하는 감정도 같이 주지 왜 열등감, 자괴감, 박탈감 등의 감정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스타의 인플루언서들이나 유명 연예인에게 심한 악플과 괴롭힘을 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보면 그저 평범한 한 가정의 아빠, 엄마, 아들, 딸들이다.
나는 육아와 살림으로 지쳐서 하루하루가 힘든데 저 사람은 나랑 똑같이 육아하는데 행복해 보이지?라는 부러움이 어느새 열등감이 되고 박탈감이 된다.
그러다 엄지와 검지는 입에 담지 못할 글들을 타이핑하며 몹쓸 짓을 한다.
그래. 평범함이 최고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도 수직적인 관계들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박탈감, 열등감, 자괴감은 생기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비슷한 점수로 입사한 회사 동기인데 누구는 현재 팀장인데 누구는 여전히 관리급도 안 되는 그런 거.. , 고등학생 때 내가 성적이 더 좋았는데 그 아이가 나보다 좋은 대학에 합격한 거..., 눈으로 보이는 공적을 쌓았는데도 공적 없이 회사에 개근상 찍는 나보다 학력 높은 동료가 진급하는 거... 뭐.... 그런 거.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글쎄. 운동선수들 중에 순위권 안에 드는 선수들만 연습벌레였을까? 친구 오디션 따라갔다가 오히려 친구가 아닌 자신이 어느새 연예인이 되어 있는데 그게 그 사람의 원래 꿈이었을까? 아니면 해보니 재미있고 더 열심히 하고 싶어 져서 그것이 꿈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일상에 치여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걸까?
그러다 품에 안긴 아기를 보면 ‘얘라도 잘 키워야지.’ ‘안돼, 내가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 아이는 자기 인생 살아야지. 내가 참견하면 안 돼’라며 웅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