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가루인형 May 23. 2021

잃지 않으려는 자

자아 정체성은 평생 가져가야 하는 숙제

퇴사하고 임신하고 출산한 지 햇수로 벌써 3년.

내 몸도 건사하기 힘든데 남편과 아기까지 같이 건사하려니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특히, 육아라는 과제가 주어져서 더욱더 그렇다. 

쳇바퀴 굴러가듯 시간이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매시간 매일이 새로움의 연속이다. 


어린이 집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아기와 함께하기 때문에 나 자신이 흐려질 때가 있다. 

(불투명한 내 몸뚱이가 이 세상을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랄까.)

아기의 성격, 발달, 그때마다의 아기에 대한 생각 등을 헤아리다 보면 나의 뇌 90% 이상은 아기로 채워져 나 자신에 대한 고찰 따윈 하지 못한다. (10%는 가사)


그래서 요즘 SNS 세상으로 잘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아기와 있을 때는 매체 차단을 위해 핸드폰은 서재 충전단자 위에 곱게 모셔두고 육퇴를 하고 나면 반사적으로 SNS 세상으로 입장한다. 

이 행위 자체가 사람을 참 초라하게 만든다. 

당연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들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런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그들의 여유와 창의성이 참으로 나 자신을 작아지게 만든다. 


그래서 모든 SNS의 푸시 알림도 꺼놓고 인친들의 피드에 '좋아요'만 누르고 재빨리 나온 후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행위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쉽지 않다. 결코 쉽지 않다. 

나의 이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재미있고 또 어떨 때는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니 말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속으로 외친다. 

'나를 찾자. 나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자.'

입 밖으로 외치면 아기가 깬다. 이건 참 답답한 일이다. 

아.... 지금 이 순간 키보드 타이핑 소리에도 아기가 깼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럴수록 추진력이 딸리고 감은 무뎌지며 시야가 좁아짐을 느낀다. 그래서 더욱더 나를 찾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도망가면 안 된다. 회피하면 안 된다.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어느 날 나 자신과 갑작스러운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나 자신 A: 지금 네가 찾고 있는 것이 뭐야?

나 자신 B: 그런 게 있어.... 근데.. 뭐였는지 생각이 잘 나진 않아. 이제까지 이렇게 해왔으니 습관처럼 찾는 거뿐이야.

나 자신 A: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기억 해내 봐.

나 자신 B: 자신을 찾기 전에 자신을 잃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잃어버렸나 봐. 그래서 무엇을 찾는지 목적도 사라졌나 봐.

나 자신 A: 그럼 편하게 현재를 만족하며 사는 건 어때? 딱히 불행한 것도 아니잖아. 이런 행복이 어디 있어.

나 자신 B: 그래도 나 자신을 찾지 않으면 나는 점점 작아져서 소멸되고 말 거야. 내 주변인들도 모르게.

나 자신 A: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너 자신이 중요해서 그런 거니? 아니면 진짜 너를 위해서니.


남들이 생각하는 나보다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이렇게 주제는 꼬인다. 


이렇게 횡설수설이라도 해줘야 질문을 계속 파고들 수 있다.

뜻밖의 전개를 얻을 수도 있을 테니.





작가의 이전글 굳짜 유전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