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야 나오는 신기한 보험이 있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내'가 가입하고 돈도 '내'가 내는 보험인데 '내'가 보험금을 받을 수 없고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돈을 받는 보험이다. 지극히 예전부터 있는 보험이다. "내가 잘 살다가 잘 죽으면 되는 것이지 내가 죽은 이후를 대비해서 살아있을때 차곡차곡 보험금을 내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아? 그렇잖아, 이상하잖아" 라며 아내도 이런 보험을 이상하다 여겼다. 나도 나와 전혀 상관 없는 걸로 여겼다.
얼마전 우연히 내 보험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 가고 있고 직장 생활에 중후반을 달리고 있고 아이셋을 키우는 상황에서 상대적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돈 내고도 돈을 내가 못받는 이상한 보험'을 검토할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내 생각도 변했다. 나는 보험설계사를 만나 그가 추천해준, '내가 죽으면 나오는 보험'에 서명했다. 한 달에 20만 원 정도를 30년을 내기 시작했다. 설계사는 당장 내일이라도 죽으면 7억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돈은 아이 셋이 모두 대학교까지 교육을 마칠 수 있는 금액으로 계산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죽는다면 아이들이 무사히 내가 죽고 받은 돈으로 공부할 수 있는 생각을 하며 안심인듯 어색함인듯 무슨 감정을 느껴야할 지 모르겠는 감정을 느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미 없다 생각하는 보험을 가입한다고 하자, 아내는 내가 괜찮으면 그렇게 하라는 신호를 보내 왔다. 내가 괜찮은가? 나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셋이나 키우면서 내게 주어지는 리스크를 헷징하려면 20만원 정도 쓰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논리로 나를 설득하고 아내에게도 설명했다. 보험금이 바로 빠져나가고 연락이 왔다. 나는 당장이라도 죽으면 돈이 들어오는 사람이 되었다. 보험 가입 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묘한 안도감과 함께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보다는 죽어도 조금은 괜찮은 구석이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후 보험 설계사가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보험 가입을 마치려면 미안하지만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친절하게도 회사로 간호사를 보내 줄 테니 피검사 등 간단한 건강 검진을 받아 달라고 한다. 그러자고 했고,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친절하고 또 친절했다. 약속한 날이 되자 간호사는 회사 공용장소로 찾아왔다. 회사 카페테리아 테이블에 마주 앉아 매우 익숙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채혈을 포함한 6개 검사를 해치웠다. 손바닥 만한 휴대용 체중계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소독한 알콜솜마저도 비닐백에 담는 걸 보니 나처럼 죽으면 돈을 받는 사람을 위해 바삐 건강검진을 다시시는 분 같았다. 간호사는 마지막으로 종이컵을 주며 소변을 받아오라고했다. 나는 화장실에 가 받아온 소변을 간호사에게 전달했다. 간호사는 내 소변을 들고 복도에 서 있다가 간단히 검사를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내가 사드린 커피를 드셨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10분만에 모든 검사가 끝났고, 설계사로부터 수고했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 우연히 내 팔뚝에 지혈 반창고를 보고 물으시는 어머니께, "보험회사에서 와서 피검사를 했어요" 라서 설명드렸다. 보험 든다고 회사까지 와서 검사하는구나.. 정도로만 말씀하셨다.
나는 죽으면 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을 가입한 고객이었고,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7억을 내줘야 하는 보험사는 반드시 내가 병이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할 간호사를 보내야 했고, 그 간호사는 내가 어느곳에 있던지 찾아와서 친절하게 검사를 해야했다. 그래도 우리는 내 죽음 앞에 서로에게 친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