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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억 Dec 07. 2023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예쁘고 빛나던 사람. 감사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외출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 직장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부고 문자였다. 나는 잠시 한동안 멍해졌다. 그리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작년 10월 암진단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그보다 몇 달 전, 함께 일하던 상사가 암진단을 받고 퇴사를 하였다. ’다시 함께하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감사패를 내가 발주했었다.


황망한 마음을 안고 조문을 가서는 상주를 위로하기는커녕 내가 대신 위로를 받았다. 꾹 참으려고 했는데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있으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상주복을 입고 담담하게 서 있는, 그녀의 아들을 보자 더 눈물이 났다. 몇년 전에 보았을 땐 아직 어린아이였는데, 어느새 그녀보다 훌쩍 커 있었다. 아이를 두고 가는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미어졌다.


그런 나를 토닥여주며 상사 분의 남편분께서 오히려 내 건강을 걱정해 주셨다.


”건강하죠? 00이가 걱정 많이 했어요. 건강해야 해요. “


안아주시는 손길이나 말투에서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졌다. 위로를 해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고 말았다.


아픈 와중에도 나를 걱정했다는 그녀... 그녀의 친한 친구였던 A는 "내가 네 걱정이나 하라고 쏘아붙였어요"라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다. 영정사진 속 그녀는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A가 고른 사진이라고 했다. "00 이는 늘 웃었잖아요."라는 말에 울다 말고 나도 웃음이 났다.


늘 웃는 사람. 사람이 어쩜 저렇게 맑고 밝을까, 몇 년간 함께 일하면서 나는 늘 속으로 그녀에게 감탄했었다. 내가 갖지 못하는 부분을 갖고 있는 그녀를 보며 살짝 질투를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 질투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게 3개월 전이었다.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었는데 요즘 컨디션이 좋다며,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항암을 하느라 밀어버렸던 머리가 제법 자라 숏컷이 되어 있었고, 그녀는 "나 머리 많이 자랐지?" 하며 내가 알던 그 웃음으로 씩 웃어 보였다. 건강해 보이는 모습에 안심을 했다. 잘 버티고 계시는구나, 생각했다.

어느날 산책을 하다 구입한 모자를 선물로 주었다. 두상이 예쁜 그녀가 쓰면 잘 어울릴 것 같아, 나중에 만나게 되면 드려야지, 했던 것이었다. 그녀도 요즘 취미로 뜨고 있다는 귀여운 모양의 수세미를 선물로 주었다. 우리는 3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고, 서로의 컨디션을 염려하며 날 선선해지면 다시 보자는 약속과 함께 헤어졌다.


간간히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녀는 항암 중이었고 나는 항암을 받지 않는 상황. 혹여라도 나의 말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늘 걱정이 되고 궁금했지만 연락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에게서 8월에 연락이 왔다. 내 생일이었다. 선물과 함께 매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게 꼭 마지막 인사처럼 들려 울컥했지만, 애써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생일은 9월이었다. 나는 그 9월만 기다렸다.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문자를 보낼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 작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올해 그녀의 생일은 카카오톡에 뜨지 않았다. 아마도 숨겨놨겠지.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하다, 철판을 깔고 카톡 선물과 함께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오전에 보냈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답장이 오지 않아 초조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톡이 왔다. 그때 좀 더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을까? 나는 여전히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척이나 많았지만 최대한 간결하게 톡을 보냈다."맛있게 드세요."


그게 마지막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데 신랑이 근처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함께 집에 돌아가는데 계속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웃는 모습이 자꾸 떠올랐고, 장례식장에서 본,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녀의 마지막이 슬프기도 했지만, 또한 자꾸 나의 상황과 오버랩이 되어 마음이 더 아팠다. 내 옆에서 나를 위로해 주고 있는 이 사람도, 결국엔 저렇게 혼자가 되는 것일까? 그것이 슬펐고, 또 마냥  순수하게 슬퍼만 할 수 없는 나에 대한 죄책감, 그것이 나를 자꾸 괴롭혔다.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며칠 동안 매일 전화를 했다.


별일 없지? 하며 괜히 안 하던 안부전화를 하는 오빠,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말아라... 와 같은 이야기들을 하는 엄마... 아빠는 10월이 되고부터 작년 이맘때가 부쩍 생각나는지, 말도 없는 분이, 밥은 먹었냐며 자꾸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마냥 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울면 가족들이 슬퍼할 테니까.


그렇게 며칠을 꾹꾹 참고 있다가 터져버렸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신랑이 노래를 켰다. 평소 좋아하며 자주 듣던 음악이었는데 뜬금없이 노래가 너무 슬프게 들려서... 그래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노래를 꺼달라고 했다. 당황한 남편이 왜 그래? 하고 묻길래 노래가 너무 슬프다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말하지 않았지만 남편도 알았겠지...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문득문득 그녀 생각이 나 눈물이 난다. 예쁘고 빛나던 사람... 그저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하시길. 그곳에서도 환하게 웃고 계시기를. 그녀의 가족과 그녀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의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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