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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억 Aug 31. 2023

3N년차 모태솔로

연애를 하지 못한 이유

이직한 지 3일 차 되던 날. 40대 후반의 상사와 함께 단 둘이 다른 지역으로 출장길에 오르게 되었다. 마땅히 할 말도 없기도 했고 또 낯을 심하게 가리는 탓에 차 안에서의 대화는 맥없이 뚝뚝 끊어지고 있었다. 어색한 기류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불편한 건 그 역시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대학의 캠퍼스를 가로질러가다 그가 불현듯 내게 질문을 던졌다.


연애 몇 번 해봤어요?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항상 받는 흔한 질문 중 하나였고 언제고 누가 연애 경험을 물어볼 것이라 생각했다(이렇게 빨리 물어볼 줄은 몰랐지만... ).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2, 3번 해봤어요,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러자 그가 뒤이어 질문을 했다.


그럼 진정한 사랑은 몇 번 해봤어요?

보통 2, 3번 해봤다 하면 끝나던데, 이 아저씨... 상당히 집요하다. 거기다 진정한 사랑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나는 역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 앞선 뜸이 철저히 계산된 뜸이었다면 이번 뜸은 정말 당황함에서 비롯된 머뭇거림이었다.


한 번도 안 해 본 것 같은데요? 내 대답을 듣고 그는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손으로 정확히 세 번. 자신의 가슴을 쳤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 곧 서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서른을 목전에 둔 여성이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않았다 대답하니 초등학생 자녀를 둔 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꽤나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억울하지도 않아요?라고 되묻는 그에게 나는 실실 웃기만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휴. 모태솔로라고 고백했음 큰일 날 뻔했네.’




나는 35살에 첫 연애를 시작했다.

사회에서 만난 직장동료들에게는 굳이 모태솔로임을 커밍아웃하지는 않는다. 보통 이 나이까지 연애를 하지 않았다고(혹은 못했다고) 하면 색안경 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번 새 회사로 출근하기 전에는 연애와 관련한 곤란한 질문들에 어떤 답을 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는 했다. 예를 들면 아까처럼 연애 경험을 물어본다면? 2~3번 정도 해봤다고 답해야지, 하는 식이다.


이 방식은 대학교 선배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었다. 정확히는 선배의 친구. 나보다 2살 많은 그녀 역시 모태솔로였고 종종 이런 곤란한 질문에 놓이곤 했다고 한다.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까 고민하던 그녀. 그녀는 결국 가상의 인물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첫사랑 A, 그리고 바람을 피워 헤어진 B, 가장 최근에 헤어진 C까지. 심지어 그녀는 각각의 캐릭터에 서사까지 부여했다고 한다. 가장 마지막 연애가 언제냐는 회사 동료의 질문에 C의 서사를 읊는데, 어느 날은 정말 헤어진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음이 많이 슬퍼졌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의 정성을 쏟지는 못했지만, 회사 생활을 하며 열심히 모태솔로가 아닌 척 연기를 했다. 연애를 권장하는 한국사회에서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는 것은 꽤 큰 약점으로 여겨지곤 했다. 어딘가 모자란 사람. 나는 그런 사람으로 비치기 싫었다.


왜 나는 이 나이까지 연애를 해보지 않았을까?

몇 가지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여 보자면 일단 환경을 들 수 있겠다. 여중, 여고를 나왔고 여대와 다름없는 성비를 가진 학과를 다녔다. 졸업 후 취업한 회사는 모두 여초회사.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사실 적절한 대답이 아닌 것이,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오고 여초 회사를 다녀도 연애할 사람은 다 연애를 한다. 나도 안다. 그래서 변명이라고 한 것이다.


결국엔 환경이 아닌 나의 문제였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려 보면. 답은 나한테 있었다. 20대의 나는 지금보다도 훨씬 소극적인 성격이었고 심하게 낯을 가렸다. 티 내지 않으려 했지만 자존감도 바닥이라 누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왜?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던 친구가 수업 끝나고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하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강의실을 바로 뛰쳐나갔다. 같이 밥을 먹는 상황을 생각하니 부끄러웠던 것 같았다.


와중에 간간히 소개팅도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괜찮은데? 싶어 세 번을 만나고서도 상대방이 만나봅시다,라고 하면 거절했다. 마음이 짜게 식은 건 아니고(애초에 식을 마음도 없었다) 그 뒤가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온전히 나를 보여줄 자신도 없었고 또 상대의 마음이 자꾸 의심이 되기도 했다. 대체 나를 얼마나 봤다고, 내가 좋대? 곧 나에게서 실망하고 떠날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건 크게 외롭지가 않았다

20대 중반까지는 대학 주변에서 자취를 하였다. 동기들, 선배들과 어울리느라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졸업 후 모두가 학교를 떠난 뒤 그곳에서 여전히 자취를 하던 나는 처음으로 외로움이란 것을 느꼈다. 만약 그때 계속 서울살이를 했더라면 나는 연애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즈음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지방에 있는 본가로 내려가게 되었고, 가족들 틈에서 외로움을 느낄새 없이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30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외로움은 꼬물거리며 막 세상에 태어난 조카에게로 향했다. 주말이 되면 조카를 데리고 온갖 곳을 놀러 다녔다. 키즈카페도 데려가고 테마파크에도 다녀왔다. 더러 엄마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나는 조카를 정말 사랑했다.


이후 직장 문제로 다시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러자 다시금 조금 외롭단 생각이 들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동네에서 혼자 생활을 하려니 서울이 너무 막막하고 서러웠다. 그래서 몇 번의 소개팅을 해보기도 했지만 다 꽝이었다. 세어보면 소개팅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한 것 같다. 이땐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삼세번의 원칙은 꼭 지켰는데, 이렇세 한 명 만나고 나면 일 년 정도는 소개팅할 기운이 없었다.


30대 중반이 되고서는 소개팅의 의지를 잃었다. 문제는 내가 외로웠고, 소개팅에는 죄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만 나왔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회사를 관두고 다시 집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날짜까지 정했다. 현재 살고 있는 자취방의 계약이 끝나는 날.




사실 다 변명이다.

서른 넘어서까지 모태솔로인 사람은 문제가 있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발끈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 경우엔(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거다) 분명 문제가 있었다. 아마도 내 병을 키웠던 습관. 미리 사서 걱정하기.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하며 미리 겁을 먹고,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습관. 그 때문에 인생이 많이 꼬인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고맙게도 나는 이 꼬이고 꼬인 마음과 감정을 찬찬히 풀어줄, 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덕분에 집으로 다시 튈(?) 계획은 실패하였고, 그와 만난 지 약 2년 후 결혼이란 걸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브런치를 통해 그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모태솔로가 어느 날 갑자기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하기까지의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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