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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억 Aug 23. 2023

암밍아웃에 대하여(2)

당황스럽다. 요즘 매일 브런치에서 알림이 오고 있다. 처음 알림이 왔을 땐 뭘 잘못 본 줄 알았다. 끽해야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 정도였던 발행글의 조회수가, 갑자기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다니. 통계를 살펴보니 다음 메인에 '고양이의 꼬리가 부풀었다'라는 글이 올라간 듯싶었다. 아주 잠깐 올라간 것이나 곧 내려가겠지, 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매일매일 알림이 온다. 조회수가 20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가 3000을 돌파했습니다... 어라...? 안되는데. 글을 지워야 하나? 순간 그런 생각도 했다.


주변에 암밍아웃을 하지 않기로 맘을 먹고 난 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사연의 분들께 이런 케이스도 있습니다,라는 위안을 드리고 싶기도 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내게도 대나무숲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혼자 이 모든 감정을 끌어안고 있기엔 내가 너무 답답했다. 남편은상황과 생각이 조금 정리된 이후에, 좀 더 모든 것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볼 수 있는 위치가 되었을 때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었다. 그러겠노라, 대답하고, 나는 지금 몰래 브런치에 글을 연재 중이다.


문득문득 드는 생각과 감정들을 모아놓고 있기엔 내가 너무 답답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날것의 감정이지만 그냥 그대로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에게도 숨겨 놓은 대나무숲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드니 당황스러웠다. 현재 ‘고양이의 꼬리가 부풀었다’의 전체 조회수는 9,819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9,0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내가 암이라고 합니다, 하고 암밍아웃을 한 꼴이 되었다(현재는 10,000명을 돌파했다). 그래서 조금 불안했다. 혹시...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글쓴이가 나라는 걸 알게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암밍아웃을 하지 않기로 한 건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상처받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더러 그런 일들이 생겼다. 가장 큰 건 오래된 친구를 잃은 것이었다.

나의 암증상은 자궁 출혈이었다. 당시에는 암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고 그저 너무 길어진 생리에 친구 a에게 상담을 받았다. 그녀는 나와 대학 동기였고, 나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갓 스무 살이 된 나에게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알려준 사람이기도 했다. 사소하게는 커피의 맛이라든지 조금 더 세련되게 옷을 입는 방법 같은 것들. 나아가 사람들의 무례를 구분하는 법이나 그런 무례에 대응하는 법 같은 것들... 그녀의 취향은 늘 멋져 보였고 그래서 나는 그녀를 따랐다. 그러니까 그녀가 내게 그런 무례를 범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아니 몇 번의 무례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흐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던 것 같다. 과거의 그녀를 떠올리며. 그래,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야. 지금의 상황이 힘들어서 그런 걸 거야. 힘들 땐 누구나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지잖아? 하면서. 그녀와의 관계를 이어왔다.


이후 암 진단을 받고 갖은 검사를 진행하고, 수술을 하기까지. 나는 친구들의 연락을 피했다.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마음도 그랬다. 까만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세상이 온통 컴컴하고 먹먹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결혼 준비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었다.


수술 후 1-2개월의 회복기간을 거친 뒤,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청첩장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꽤 바쁜 일정이었다. 당연히 a와도 만났다_잠깐 설명을 하자면 a와 다른 대학동기 b까지 우리는 늘 셋이 만났다. 그리고 나와 b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결혼을 하게 되었다. a는 미혼이었고 갑작스럽게 친하게 지내던 동생들이 결혼을 한다는 사실에 꽤 상심해 있었다. 30대 중후반. 결혼 생각이 없더라도 주변의 친구가 결혼 소식을 전하면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나이였다. 동시에 둘이 가 버린다니 마음이 많이 헛헛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와 b는 그녀를 대할 때 조금 더 조심스러웠고 또 배려했다.


“그래서,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


청첩장을 받아 들면서 a가 물었다. 임신을 하면 노산에 속하는 나이인지라,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질문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에게는 나 딩크야,라고 답했다. 요즘은 딩크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으니 거기서 이야기는 대충 마무리가 되고는 했다. 처음에는 a의 질문에도 딩크 할 건데?라고 답했다. 그런데 뒤이어 a가 그때 병원 간 건 어떻게 됐어?라고 물었고,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말했다. 그녀에게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b와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통화를 잦게 했는데, 통화를 하며 암밍아웃을 한 상태였다).


“실은... 나 아기 못 가져. 수술했거든. 암 이래.”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을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 부정출혈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아마 내가 이런 대답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 나온 a의 대답 역시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와. 난 보험 없는데. 어떡하냐. 넌 보험 뭐 들었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너무 황당한 나머지 내 머릿속도 고장이 났나 보다. 나는 친절히 우리 나이에 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보험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녀는 심지어 내게 믿을 수 있는 보험 설계사를 소개해 달라는 말도 했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 고생 많았어,라고 말하며 살짝 눈물지으며 나를 안아주는 그녀를 보며, 그래, 언니도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나왔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화가 난  b의 전화를 받기까지...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온 b는 자신은 앞으로 언니를 만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왜? 하고 물으니 돌아오는 답이 기가 막혔다. 내 결혼식이 끝나고 같이 돌아가는 길에, a가 그렇게 말했단다. “00(글쓴이)는 이제 됐고! 너도 아기 갖지 말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해야겠다”라고... 나는 순간적으로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뭘 들은 걸까....? a는 우리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다고 하니 앞으로는 이렇게 자주 만나지 못하겠다며 슬퍼했다(사실 징징에 더 가까웠다). 외로워하는 a가  안타까워 우리는 언니를 자주 위로했다. 괜찮아, 자주 볼 수 있어,라고. 그러면 a는 그렇게 대답했다. ”아냐, 결혼하고 애 낳고 하면 자주 못 봐.” b는 확정적인 딩크는 아니었지만 결혼 후 아기 계획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부분을 가끔 이야기하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저게 두 손 모아 기도할 일인가? 그리고... 내가 아픈 건 그녀에게 이제 된 일인 걸까? 마음이 많이 심란했다.


당연하겠지만 a와 인연을 끊었다.

물론 a와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아니 a가 많이 특이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왜 말하지 않았냐며 좋은 일이든 힘들 일이든 너의 옆에 있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건강을 챙겨야 한다며 고기와 과일을 보내주는 친구도 있었다. 만날 때마다 건강한 거 먹어야 한다며 한식집으로 데려가는 친구도 있고, 차가운 음료를 주문하면 따뜻한 걸로 바꿔주는 친구도 있다. 별말 없이 건강이 최고다, 네가 행복하면 됐다, 툭툭, 따뜻한 말을 던져주고 가는 친구도 있다.


a처럼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무서워 암밍아웃을 하지 않기로 한 것도 있지만, 은연중에 이런 좋은 친구들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품게 되는 내가 두려워, 그리고 내 맘대로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암밍아웃을 하지 않기로 한 것도 있다. 내 가족들, 아니 나조차도 가끔은 내가 암이란 사실을 잊고 행동을 하는데, 친구들이야 오죽할까 싶다. 실제로 친구 한 명은 내 수술 사실을 깜빡하고 “너랑 오빠 닮은 아기 낳으면 얼마나 귀여울까?”라는 말을 하고서는 그 자리에서,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도 내내 사과를 하였다. 그 워딩에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대화 속에서 그런 의도가 없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다고, 상처받지 않았다고, 미안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며 나 역시 진땀을 뺐다.


이런 사건들로... 이미 해버린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더 이상의 암밍아웃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한정적으로 되어버렸다. 회사 일이 너무 힘들다며 관두고 싶다 투덜대는 친구에게는 해줄 말이 없어 입을 꾹 닫는다. 회사를 관둔 나는 세상 팔자 편한 전업주부였으니까. 심지어 아기도 없다! 더이상 누군가와 이별하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냐며, 결혼해서 너무 부럽다,라고 말하는 친구에게도, 가끔, 아니 꽤 자주 다른 종류의 이별을 생각한다는 말을 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문다. 너는 별일 없지?,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에 그냥 그렇게 지내지 뭐,라고 말한다.




사실 여기저기 암밍아웃을 할 필요는 없다. 내 옆에, 단단히,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외롭지 않다. 오늘은 조금 우울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다음번 글에서는 나를 단단히 지켜주는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남편. 나의 편. 늘 나를 깔깔 웃게 만들어주는 사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내 사람.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혹시 글쓴이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시다면... 조용히 저의 대나무 숲을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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