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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억 Aug 28. 2024

도무지 잊히지 않는 기억

프롤로그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도무지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존재한다. 대부분 어떤 의미로든 강렬한 경험들이 그런 기억으로 남을 텐데, 내 경우는 2022년 10월 11일이 그런 날이었다. 나는 그날 암환자가 되었다. 조직검사 결과 암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밖에 나가 다음 일정을 잡으라는 안내에, 나는 다소 멍한 얼굴로 진료실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내 안의 혼란이 채 정리도 되기 전에, 카톡이 왔다. 산정특례 등록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내게 부여된 낯선 등록번호를 보며, 나는 혼란스러웠고 두려웠다. 암입니다,라는 말이 곧 죽습니다,라는 말처럼 다가왔다.


암이 곧 죽음이라는 것은 잘못된 공식임을, 지금은 안다. 기대수명인 83.6세까지 생존할 경우 사람이 암에 걸릴 확률은 38% 정도이며, 65세 이상 노년인구 7명 중 1명은 암유병자라고 한다. 암환자 10명 중 7명은 5년 이상 생존율을 보일 정도로 생존율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람이 살면서 일생에 최소 한번 이상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 약 35%라고 하니, 어찌 보면, 교통사고보다 더 흔한 것이 암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암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사고이고, 나는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그런 불행한 사고를 겪은 것에 불과하다.


알지만.


여전히 암환자라고 했을 때 나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 또는 무거운 침묵 등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 때가 있다. 행복과 두려움, 기쁨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삶은, 암진단을 받기 전과 후로 명확하게 나뉘었다.




암 진단 후 수술을 하고, 이제 2년이 되어간다. 정확히는 21개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우선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관뒀고, 결혼을 했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왔다. 몇 년째 입으로만 도전해 보겠다고 떠들어대던 일에도 도전을 했다. 운이 좋게도 좋은 기회에 그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되었다. 결과는 시원치 않지만, 어디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느냐며 다독여주는 신랑과 친구들이 있어 계속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수술을 받은 대학병원에 정기검진을 갔다. 수술 이후 3개월 단위로 꾸준히 정기검진을 가, 몸에 이상은 없는지, 전이된 부분은 없는지를 확인하고 있는데, 다음 검사 이후부터는 별 문제가 없다면, 3년 차부터는 검진 주기가 6개월로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잦은 검진이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검진 텀이 길어진다고 하니, 막상 마음속에 작은 불안이 꿈틀댔다. 정말 알 수 없는 마음이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있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며, 지난봄, 남편과 함께 하천을 걷던 날이 문득 떠올랐다.


볕이 따뜻한 주말 오후. 남편과 집에서 내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담아 집 주변 하천을 산책하던 날이었다. 봄이었고, 내리쬐는 햇볕도, 불어오는 바람도, 그리고 우리 앞을 다정히 걷는 노부부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날이었다. 하지만  앞서 가는 노부부를 보며, 나의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것을, 남편은 알았을까?


이른 나이. 결혼을 앞둔 어느 가을. 암 진단을 받은 뒤로 나는 종종 죽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에게는 소망이 하나 생겼다. 당신과 함께 예쁘고 늙고 싶다는 소망이. 나는 늙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일인지를, 알고 싶지만 알게 되었다.


혼란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다독이고자, 작년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아쉽게도 꾸준하게 해오지 못했다). 생각 나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썼는데, 그때는 내 안의 감정들이 조금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면 아닌 듯싶다. 그저 내게 떠들어댈 수 있는 대나무숲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마침 해오던 일이 조금 정리가 되는 시점이라, 다시 브런치 연재를 시작해 볼까 한다. 마음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고 발행했던 글을 조금 더 정리하고, 그 시간들을 좀 더 정제해 올려볼까 한다. 그와 함께 늙고 싶다는 예쁜 소망을 담아. 내 곁을 지켜주는 그에게 언젠가 이 글을 보여줄 날이 올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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