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수치, 다른 체감
동남아의 물가는 저렴하다. 하지만 발리의 물가는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비싼 편이다.
발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동양인보다 서양인을 더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들과 발리니즈 사이에 팽팽한 물가 긴장감이 유지된다.
예를 들어보자.
평범한 발리니즈들은 길거리에서 쌀국수를 간단히 사 먹는데 한국 돈으로 천 원 정도를 지불한다. 나의 경우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에서 백반 한 끼 먹고 8천 원 정도를 지불한다. 점심 식사로 8천 원~1만 원 초반 대를 쓰기 때문에 밥 한 끼가 4천 원만 돼도 아주 저렴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결국 발리 관광지의 물가는 발리니즈에겐 비싸지만, 관광객에는 저렴하게 느껴지는 수치로 맞춰진다. 그래서인지 음식점엔 서양인을 포함한 관광객들 뿐이고, 발리니즈들은 길거리에 앉아 쌀국수를 먹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렇게 물가는 계속 오르고, 발리니즈들은 관광업으로 업종을 전환한다. 그래야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우리가 만난 Wayan 씨는 1일 가이드다. 인원수에 상관없이 10시간 동안 운전을 해주면서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고 설명도 해준다. Wayan 씨와 우리는 10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중에 내 뇌리에 깊이 박힌 대화가 있다.
일행: Wayan 씨, 한국에 와본 적 있어요?
Wayan: 아니요. 한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만나긴 했지만, 가본 적은 없어요.
일행: 한국을 여행할 계획이 있나요?
Wayan: Next Life...? (다음 생에...?)
Next Life...
Wayan 씨는 아주 담담하게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모습에 우리도 함께 웃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웃지 못했다. 여행 내내 Wayan 씨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속상해했다.
동남아에선 저렴한 가격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고, 고급 호텔에서 좋은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반면, 마사지사들은 무릎을 꿇은 채로 나의 더러운 발을 씻겨 주고, 땀에 젖은 내 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해준다. 손님이 보스라며 아프진 않은지, 압력은 어떤지, 온도는 괜찮은지 계속 체크한다.
이들의 소득은 얼마일까? 내가 세상을 여행하는 것처럼 이들도 열심히 일하면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발리니즈들은 자기 일을 사랑하고, 돈을 벌면서 행복할 텐데 내가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건 아닐까? 돈을 내고 서비스를 향유하면서도 이런 물음이 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발리의 아궁산 폭발로 뉴스가 떠들썩할 때, 화산지대에서 관광업을 하던 사람들이 잘 대피했을지, 일은 잘하고 있을지 걱정에 발리 소식에 신경이 곤두섰다.
적어도 그들이 일하는 만큼, 관광객이 지불하는 금액만큼 돈이 분배되길 소망해본다.
Wayan 씨가 한국에 여행을 오고, 내가 그에게 한국을 소개해주는 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