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 토막 이야기 1편: 브레인스토밍
길을 잃거나 짙은 안개로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브레인스토밍이라는 만능 열쇠(처럼 보이는 것)를 꺼냅니다.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브레인스토밍이라는 말이 꽤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직장인이라면 응당 해야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회의실에 프로들이 모여 미래를 위해 피 터지게 토론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래 이게 바로 성공한 커리어 직장인이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금은 누가 브레인스토밍을 하자고 하면, 심기가 불편해지고 한 편으론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신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이런 생각도 들죠. ‘또 시간 낭비하겠네.’
이론적으로 브레인스토밍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획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참여자들이 문제 해결 방안을 자유롭게 제시하며 실행 목록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브레인스토밍이 싫어졌을까요? �
맛집 지도 플랫폼 대표인 김시오는 긴급이라며 박광고, 현총무, 송기획, 허그린, 권개발을 회의에 초대했습니다.
김시오: 미팅을 시작하겠습니다.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월 매출 1억을 달성하려면 뭘 해야 할까요?
나머지: (어리둥절)
김시오: 이곳은 우리 모두의 회사입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편하게 아무 말이나 해봅시다.
현총무: 국내 유저뿐 아니라 동남아 유저들도 쓸 수 있는 맛집 플랫폼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박광고: 상세 페이지에 광고 구좌를 만들고, 광고를 개인화하여 보여주면 어떨까요? 가입 시, 유저의 관심 키워드를 수집했고, 쌓아 놓은 데이터도 많으니 매칭되는 광고를 노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시오: 광고는 시기상조입니다. 유저를 모으는 게 우선이에요. 숨은 맛집을 발굴해서 인증 마크를 붙여주는 등 추천 신뢰도는 유지하면서 자영업자와 상생할 방안이 필요해요.
송기획: 숨은 맛집에 인증 마크를 붙여주면 다른 플랫폼에서는 찾기 힘든 맛집을 발견하게 될 테니 유저 획득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유료화 모델로도 전환할 수 있고요.
권개발: 인증 마크는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부여하는 건가요, 내부 직원이 선정한 맛집에 붙여주는 건가요? 후자일 경우 관리자 페이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시오: 관리자 페이지 개발은 얼마나 걸리나요?
권개발: 글쎄요. QA까지 하면 한 달 정도 예상하는데 스펙에 따라 달라집니다
김시오: 그렇군요. 그럼 한 달 뒤를 목표로 관리자 페이지를 통해 인증 마크 붙여주는 것으로 해보죠. 모두 의견 감사합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허그린: ….
여러분의 브레인스토밍은 어떠신가요? 이 대화를 보고 “어머 우리 회사랑 똑같아! 소름”이라며 공감하셨다면 너무 슬플 것 같습니다.
현총무의 발언은 지나치게 몽상적입니다. 물론 큰 꿈을 꾸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미팅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지 두루뭉술한 방향성을 말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또렷한 아이디어가 함께 제시되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박광고의 아이디어에 대한 김시오의 발언은 어땠나요? 편하게 얘기하라고 해놓고 바로 퇴짜를 놓았습니다. 유저를 모으는 게 우선이었다면 사전 안내하여 모두의 이해도를 맞춰야 합니다.
눈치 빠른 송기획은 김시오가 툭 던진 아이디어를 바로 낚아채 디벨롭하기 시작합니다. 이 회의는 아이디어 리스트를 만드는 브레인스토밍인데 권개발은 개발 방법까지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허그린은 갑작스럽게 초대받은 미팅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매출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면 이미 김시오가 원하는 대로 결론이 난 것 같으니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은걸까요?
브레인스토밍은 한 끗 차이로 모두의 시간을 낭비하는 악수가 되기 쉽습니다. 미팅 시간 X 미팅 참여 자 수 X 평균 시급을 계산해보면 브레인스토밍을 엉망으로 만드는 주최자가 낭비하는 금액이 얼마인지 쉽게 계산해볼 수 있습니다.
미팅 시간 ⏱ X 미팅 참여 자 수 ��� X 평균 시급 �
그럼 생산적인 브레인스토밍을 만들어봅시다.
1. 브레인스토밍이 꼭 필요한지 생각해보기
내가 혼자 결정해야 하거나, 유저 리서치 등을 통해 답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선정할 여지가 있는지도 고민해 봅시다.
2. 목표와 배경 설명을 명확하게 하기
무엇을 달성하기 위한 것인지, 그리고 어떤 제약이 있는지 정합시다.
단순히 [새 서비스 네이밍을 생각합시다] 보다는 [60대 이상 은퇴자들]을 위한 [투잡 플랫폼의 네이밍을 생각합시다.] 단, 듣자마자 뜻을 이해하실 수 있도록 [두 글자 한글]이면 좋겠습니다. 로 정리해보면 더욱 효율적으로 아이디어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3. 회의 참여자 선정하기
사람이 많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의견을 내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참여자들에 편승하여 의견을 안 내는 사람도 나옵니다. 전문성이 필요한 브레인스토밍이라면 특정 직무의 사람만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호스트를 제외하고 최대 네 명을 초대한다는 생각으로 꼭 필요한 사람을 추려봅시다. ‘우리 회사 직원이 네 명인데, 다 초대 하지 않으면 서운해하겠지?’라는 마음은 접어둡시다.
4. 미팅 전 참여자들을 아젠다에 얼라인시키기
브레인스토밍은 서프라이즈 파티가 아닙니다. 미팅 전, 2번에서 정의한 것을 참여자들에게 알리고, 어느정도 필요한 레퍼런스를 찾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줍시다.
5. 1번에서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하다고 결론이 났어도 2, 3, 4를 고민하여 마음이 바뀌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제라도 취소합시다.
6. 아이스 브레이킹
드디어 미팅이 시작되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창의적인 환경에서 나옵니다. 경직된 분위기로 시작하지 않도록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도해봅시다.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다른 직업을 갖는다면?
피하고 싶은 상사 밸런스 게임!
7. 미팅 잘 진행하기
그 누구의 제안을 관철시키는 목적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것이 목적입니다. 질보다 양이 중요한 순간입니다. 시간과 규칙을 정해놓고 참여자들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서로 토론할 수 있게 합시다.
8. 결정할 사람은 누구? 결국 나
미팅이 끝났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를 모두 실행할 수는 없습니다. 다각도 분석을 통해 선정을 해야하며, 그 어느 아이디어도 선정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지합니다. 참여자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이를 잘 안내하고, 선정 결과와 근거를 알려준다면 다음 브레인스토밍은 더 개선된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에겐 이것이 마지막 브레인스토밍이 아닐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