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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혜 Aug 11. 2019

여행객과 발리니즈, 그 사이의 물가

같은 수치, 다른 체감

동남아의 물가는 저렴하다. 하지만 발리의 물가는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비싼 편이다.

발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동양인보다 서양인을 더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들과 발리니즈 사이에 팽팽한 물가 긴장감이 유지된다.

1박에 5만 원. 우붓스러운 수영장 두 개, 위의 뷰를 볼 수 있는 테라스, 맛있는 조식이 제공된다.
1박에 8만 원. 수영장과 호화로운 조식, 킹 베드가 제공된다.


예를 들어보자.

평범한 발리니즈들은 길거리에서 쌀국수를 간단히 사 먹는데 한국 돈으로 천 원 정도를 지불한다. 나의 경우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에서 백반 한 끼 먹고 8천 원 정도를 지불한다. 점심 식사로 8천 원~1만 원 초반 대를 쓰기 때문에 밥 한 끼가 4천 원만 돼도 아주 저렴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결국 발리 관광지의 물가는 발리니즈에겐 비싸지만, 관광객에는 저렴하게 느껴지는 수치로 맞춰진다. 그래서인지 음식점엔 서양인을 포함한 관광객들 뿐이고, 발리니즈들은 길거리에 앉아 쌀국수를 먹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렇게 물가는 계속 오르고, 발리니즈들은 관광업으로 업종을 전환한다. 그래야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샐러드, 식사 두 개, 주스, 맥주를 시키고 한화로 14,000원을 지불했다.


우리가 만난 Wayan 씨는 1일 가이드다. 인원수에 상관없이 10시간 동안 운전을 해주면서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고 설명도 해준다. Wayan 씨와 우리는 10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중에 내 뇌리에 깊이 박힌 대화가 있다.


일행: Wayan 씨, 한국에 와본 적 있어요?

Wayan: 아니요. 한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만나긴 했지만, 가본 적은 없어요.

일행: 한국을 여행할 계획이 있나요?

Wayan: Next Life...? (다음 생에...?)


Next Life...


Wayan 씨는 아주 담담하게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모습에 우리도 함께 웃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웃지 못했다. 여행 내내 Wayan 씨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속상해했다.


동남아에선 저렴한 가격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고, 고급 호텔에서 좋은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반면, 마사지사들은 무릎을 꿇은 채로 나의 더러운 발을 씻겨 주고, 땀에 젖은 내 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해준다. 손님이 보스라며 아프진 않은지, 압력은 어떤지, 온도는 괜찮은지 계속 체크한다. 

1시간 전신 발리니즈 마사지 9000원. 마사지 후에 과일과 차는 서비스!


이들의 소득은 얼마일까? 내가 세상을 여행하는 것처럼 이들도 열심히 일하면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발리니즈들은 자기 일을 사랑하고, 돈을 벌면서 행복할 텐데 내가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건 아닐까? 돈을 내고 서비스를 향유하면서도 이런 물음이 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발리의 아궁산 폭발로 뉴스가 떠들썩할 때, 화산지대에서 관광업을 하던 사람들이 잘 대피했을지, 일은 잘하고 있을지 걱정에 발리 소식에 신경이 곤두섰다.

적어도 그들이 일하는 만큼, 관광객이 지불하는 금액만큼 돈이 분배되길 소망해본다.

Wayan 씨가 한국에 여행을 오고, 내가 그에게 한국을 소개해주는 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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