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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과 책임, 그리고 아이의 세상

『폭력과 정의』를 읽고

by haley

현주언니.


첫째의 세 돌도, 언니의 엄마로서의 세 돌도 너무 축하드려요. 아이가 아픈 때면 온종일 바쁘고 정신이 없지요. 그 시간들 잘 견뎌내셨는지요. 언니와 둘째 그리고 온 가족 모두요. 아이가 아프면 집안 전체에 비상벨이 울리잖아요. 모두가 견뎌줘야만 하는 시간, 부디 무사히 잘 끝났기를 바라봅니다. 나무도, 언니의 두 아이도 추운 겨울 무탈하게 잘 지내기를 기도해요.


언니의 편지를 받고 난 이후,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의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로스터리 자사몰 오픈을 준비했고, 매장을 보았고,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렀고, 나무의 유치원 입학설명회들을 신청하여 다녀왔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엄마가 도와주셔서 간신히 집에 발 디딜 틈이 생겼답니다. 그러는 틈틈이 『폭력과 정의』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주어진 모든 일정들을 소화하는 2주 동안, 저는 엄마로서 스스로에게 계속 같은 질문을 해야 했어요. '나무에게 이걸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폭력과 정의』는 문학 작품과 영화를 통해 그 안에 스며든 법에 대해,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제목이 꽤나 진지해서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책의 내용은 그에 비해 수월히 읽힙니다. '문학으로 읽는 법, 법으로 바라본 문학'이라는 부제 그 자체예요. 저자이신 두 분이 학생들을 오래 가르친 교수님이라서 그런지 쉬운 언어로 생각할 거리들을 마구 던져줍니다.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꼭지가 있습니다. <동화와 신화 속에 도사린 성차별>이라는 꼭지예요. 해님달님, 빨간 모자, 백설공주. 언니의 아이들은 많이 읽는 동화인가요? 나무는 정말 좋아하는 동화입니다. 제가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는 엄마이다 보니, 나무는 생활동화보다 먼저 명작동화와 전래동화를 읽었어요. 물론 제가 읽고 나무는 듣는 거지만요. 명작동화는 뭐랄까, 살면서 당연히 알고 있는 기본 지식 같은 거잖아요. 여러 개의 명작 동화 중 나무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이 해님달님, 백설공주 그리고 빨간 모자예요. 헨젤과 그레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를 포함해서요.

사실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편에 조금 걱정이 있기도 했습니다. 명작동화는 대체로 잔인해요. 호랑이가 엄마를 잡아먹고, 늑대가 할머니와 빨간 모자를 잡아먹고, 무서운 왕비가 사냥꾼에게 백설공주를 죽이라고 시켰다가 실패하자 결국 본인이 죽이기 위해 늙은 할머니가 되어서 독사과를 만들어 가지고 와요. 또 새엄마는 헨젤과 그레텔을 숲에다 두 번이나 버리고, 늙은 마녀는 어린이들을 잡아먹고요. 결국 마녀를 죽이는 건 또 어린이인 그레텔이에요. 이렇게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읽어도 될까 싶은 마음 반, 이건 모두가 아는 배경 지식이기에 알아야 한다는 마음 반,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계속 읽어왔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 예를 든 동화가 딱 나무가 좋아하는 해님달님, 빨간 모자, 백설공주인 거예요. 해님달님을 읽으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세 가지가 있다고 해요. 책의 내용을 조금 인용해 볼게요.

첫째, 우물에 비친 두 남매의 모습을 보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호랑이에게 여동생이 까르르 웃으며 "우리는 나무 위에 있는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호랑이가 나무 위로 어떻게 올라갔느냐고 묻고 오빠가 참기름을 바르고 올라왔다고 말하는데, 호랑이가 기름에 미끄러지자 여동생이 까르르 웃으면서 "도끼로 찍고 올라왔지" 하고 가르쳐주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여자는 말이 많고, 여성은 말로써 화를 불러온다"라는 은밀한 메시지를 어린아이들의 뇌리에 무의식적으로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셋째, 마지막에 호랑이가 벌을 받아 죽고 남매가 하늘로 올라간 후 오빠는 해가 되고 여동생을 달이 되는데, 여동생이 밤을 무서워하자 오빠가 달이 되고 여동생이 해가 된다는 결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분명 "여자는 겁이 많아서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보인다. p.206-207

ㅎㅎ민트』

해님달님을 읽어줄 때마다 확실히 여동생이 말하는 대목에서 고구마 백개를 먹은듯한 답답함을 느끼는데요. 무심코 읽어주었던 이 대목이 아직 어린 나무에게는 여성에 대한 어떤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어요. 해님달님은 백번 양보해서 넘기더라도, 백설공주는 정말 고민거리입니다. 최근 나무와 나무 친구들이 카페에 놀러 올 때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보여주었는데, 아이들이 매번 백설공주를 보여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래서 1930년대에 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를 틀어줬어요. 정말 예스러워요. 난쟁이들의 몸 개그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넘어갑니다. 그런데 같이 앉아서 볼 때마다 저는 내용이 잘 소화되지 않았습니다. 백설공주는 뭐랄까요. 너무 수동적이라고나 할까요. 가만히 있다가 위험에 빠지고, 위기 상황에서 구해주는 이가 사냥꾼이나 난쟁이나 왕자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백설공주를 보고 난 후 어느 날엔가 나무가 "왕자님은 어디 있지?"하고 물었어요. 제가 "왕자님 없는데."라고 대답했더니 "아니 왕자님이 있어야지!"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심드렁하게 "그럼 네가 하던가~"라고 대답했더니 "나는 공주님이잖아! 왕자님이 있어야지!"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마디 했어요. "왕자님은 필요 없어~"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을 보셨나요? 저는 너무 좋아하는 웹툰이라 드라마도 다 챙겨보았어요. 유미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등장해 기발하고도 보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시즌1 마지막 화에 나옵니다. 유미가 자신의 마음속 게시판을 관리하는 세포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남자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어요. 게시판 세포는 "남자 주인공은 따로 없어! 이곳의 주인공은 한 명이거든."이라고 대답해요. 유미의 연애사를 보여주는 드라마에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스쳐가는 남자들이 아니라 바로 너라고 명확히 이야기해 주는 거죠. 앞선 대화에서 자연스레 왕자님을 찾는 나무를 보며 <유미의 세포들>의 이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왕자님은 필요 없어!"라고 대답했던 것 같아요.


명작동화를 읽히며 마음에 걸렸던 부분을 구구절절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로운 점도 있었습니다. 동화에서는 늘 공주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잖아요? 백설공주도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요, 신데렐라도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습니다. 그래서 나무가 '돌아가셨다'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어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나무에게 왕할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그대로 "왕할머니가 많이 아파서 돌아가셨어. 그래서 우리도 왕할머니한테 빠이빠이하러 가야 해"라고 말했는데 바로 이해하더라고요. 한참을 "왕할머니 돌아가시면 안되는데." "왕할머니 많이 아파서 돌아가셨어? 안되는데." 했어요. 첫날 장례 일정을 마치고 난 새벽, 잠들었던 나무가 별안간 서럽게 울었어요. 한참을 울다 진정이 되었는지 애착 배게를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토끼배게야, 왕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우리는 왕할머니한테 빠이빠이 해야 해." 키가 1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아이가 나름의 방식으로 왕할머니를 애도하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만큼은 잔인하고 성차별적일지라도 공주 동화들이 참 고마웠답니다.

최근 디즈니는 시대를 잘 따라가고 있는 듯해요. 백설공주도 2025년에 실사판으로 영화가 나왔더라고요. 그 영화 속에서 백설공주는 백성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마음이 따뜻한 공주예요. 그리고 결국엔 여왕이 되어 정의롭게 나라를 다스립니다. 나무에게 보여줬는데, 아직 실사판은 재미없어했어요. 나무가 초등학생 정도 되면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틀은 언제나 깨질 수 있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무가 백설공주보다 엘사 여왕을 더 좋아한다는 거예요. 물론 예뻐서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그래도 얼어붙은 안나를 구한 것이 전통적인 왕자가 아닌 언니 엘사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었던 겨울왕국이, 백설공주보다는 훨씬 나은 듯해요.


현주언니.

저는 요즘 아이를 키우면서 제 입과 말의 무게를 새삼 느낍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궁금한 아이에게 적절한 언어로 정확하게 설명해야 하는 책임이 저에게 있으니까요. 왕할머니를 보내드린 후 글을 완성하지 못해 무거운 마음으로 유치원 설명회를 들으러 돌아다녔던 지난 일주일 동안, 제 마음에는 더 큰 돌덩이가 얹어졌습니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이후 아이가 만날 다음 세상을 정해야 하는 것도 또 저라서요. 검색도 열심히 하고, 설명회도 열심히 듣고, 시설도 빠짐없이 돌아보고, 우리 가정의 여건과 나무의 성향도 고려하면서 유치원 우선모집 접수를 마쳤습니다. 결과와 그 이후 과정은 신께 맡겨야겠지요.

언니는 요즘 두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설명하고 계실까요? 하루하루 새로운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빠르게 익히고 습득해 가는 아이를 보면서 대견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이 두려움은 엄마로서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서 오는 걸 거예요. 내가 나를 더 믿어야 할 텐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곁눈질로 독서를 하고 가까스로 글을 완성했어요. 외할머니를 보내드릴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왕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 나무보다도 저인데 말이에요. 워킹맘이셨던 엄마 대신 어린 저를 돌봐주셨던 분이 외할머니시거든요. 나무는 서럽게 울었던 새벽, 왕할머니를 잘 보내드린 것 같은데 저는 아마 더 오래 걸릴 듯해요. 당장 눈앞에 쌓인 일이 너무 많은 어른이니까요. 나무가 처음 만나는 세상을 친절히 설명해야 하는 저마저도 아직 처음 겪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작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나무에게 다방면에서 옳은 방향으로 세상을 알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자고 잘 다독여봅니다.


날씨가 정말 춥습니다. 다시 한번, 모든 가족이 아프지 않고 즐겁게 겨울을 맞이하시기를 바라요. 나 자신을, 그리고 아이들을 더 믿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편지를 줄입니다.


2025년 11월 5일

지은 드림.



<우리를 지키는 편지> 매거진에는 매주 현주와 지은이 책을 읽고 서로에게 편지를 써 업로드합니다. 앞선 편지, 앞으로의 편지가 궁금하신 분은 매거진을 눌러 읽으실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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