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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현 Oct 28. 2022

'비밀을 말할 시간'을 지연시키는 말과 태도

구정인, <비밀을 말할 시간>

1. '비밀을 말할 시간'을 지연시키는 말


구정인의 그래픽 노블 <비밀을 말할 시간>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낯선 사람으로부터 겪은 성폭력 피해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청소년이다. 이 이야기에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비밀을 말할 시간'을 지연시키는 사람들과 비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나온다. 주인공이 입을 다물게 순간들은 주인공의 가장 가까이에 있고, 가장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 엄마와 담임교사의 말에서 비롯된다.  


담임 : 선생님은 은서가 정말 기특해. 엄마랑 둘이서 잘해 나가는 것도 그렇고. 공부만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되겠어. 이제 곧 고등학생이니까.
주인공 : 네...

엄마 : (뉴스에서 아동 성폭력 기사가 나오자) 어휴, 요즘 세상이 참... 너는 별일 없이 커서 얼마나 다행이니.
주인공 : (말없음)


'너는 잘해 나가고 있다', '너는 별일 없이 잘 크고 있다', 어른들의 이런 기대가 주인공의 용기를 좌절시킨다. 주인공이 비밀을 말할 경우, 상대방에게서 예상되는 반응, 즉 충격받거나, 놀라거나, 절망하거나, 슬퍼하거나,... 주인공은 이런 반응에 대해 책임감, 죄책감, 수치심을 갖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그래서 입을 다문다.


2. 비밀을 봉인 해제하는 말


주인공 : 성추행당한 적 있어?
친구 : 야, 당연하지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살면서 성추행 안 당해 본 게 더 신기하지. 우리 학교에도 변태들 있잖아. 수학 맨날 귓볼 만지는 거 개짜증 나!


주인공이 비밀을 말했을 때, '적절하게' 반응한 사람은 친구, 그리고 그 친구와 함께 찾아간 산부인과 병원 의사다. 친구는 '성추행당한 적 있냐'는 주인공의 말에, "야, 당연하지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살면서 성추행 안 당해 본 게 더 신기하지. 우리 학교에도 변태들 있잖아. 수학 맨날 귓볼 만지는 거 개짜증 나!"라고 말한다. 주인공을 오랫동안 괴롭힌 '비밀'이 봉인 해제된 순간이다.


'누구나 겪는 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전제가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다. 주인공은 그 말을 듣고 입이 열린다. 친구의 입에서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러한 공감대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동행'의 언어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직업적으로 적절하게 반응한 의사 외에 또 한 사람, 주인공의 비밀 봉인 해제의 순간을 함께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엄마다. 비밀을 말한 순간, '왜 모르는 사람을 따라갔냐'라고 말해 주인공의 응축된 분노를 터트리긴 했지만, 이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잘못되지 않았어. 괜찮아." 엄마의 이런 말들은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치고서 나왔다.


3.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면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고, 잘못되지도 않았다는 걸. 나는 괜찮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일하게 된 직장에서 상급자로부터 성적 괴롭힘(성희롱)을 겪은 어느 젊은이가 있다. 그 사람이 그 일로 인해 겪은 가장 큰 상처는 다름 아닌 부모의 반응에서 비롯되었다.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 부모가 제일 처음 했던 말은 '네가 빌미를 준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처럼 재난의 피해자는 흔히 가장 이해받고 싶었던 사람으로부터 가장 크게 상처받는다.


주인공의 친구와 산부인과 의사처럼 처음부터 줄곧 적절한 태도와 반응을 보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주인공의 엄마처럼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야 무엇이 적절한 반응이었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같다. 가장 도움을 바랐던 사람으로부터 부정당하고 외면당하게 되면 그 상처가 너무 크다.


그러니,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면, 우리는 배워야 한다. 아끼는 누군가가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봉인된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일상을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제대로 반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제대로 반응하는 법은 어느 누구도 재난 없이 살아가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직시하는 것, '무사함', '별일 없음', '잘될 것임'이라는 나의 목적에 상대방을 귀속시키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족.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좀 잘해보겠다고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들에게 '모두 꼭 통과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시험을 코 앞에 두고 몇 명이 시험 포기 의사를 밝혔다. 각자 그 배경은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된 이유가 있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 뭐가 두려운지 물었을 때, 한 학생이 내게 이렇게 답했다. 선생인 나를 실망시킬까 봐 두렵다고. 교육적 관계에서 선생의 목적/성과지향적 태도가 학생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자긍심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 그제야 그 단순한 이치를 깨닫고 학생들 모두에게 미안하고 스스로 크게 부끄러웠더랬다. <비밀을 말할 시간>을 읽으면서, 그때 그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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