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본 서울 체크인이라는 프로에서 이효리와 옥섭 감독, 배우 구교환의 대화가 마음에 찌르르하고 오래오래 남는다.
연민을 가지고 사람을 봐요,
너무 미우면 그냥 사랑해버려요.
아... 미운 놈 떡 하나 준다는 말이 이런 뜻인가?
아이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내 마음에 전혀 없던 미움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내가 미워하게 될 거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상, 남편을 향한 미움이었다. 그 미움은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자라나서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 미움을 마음속에 꼭꼭 감춰두지 못하고 날을 세우고 남편에게 쏟아냈던 밤이 있다. 아이 돌 무렵이었을까. 그때 남편은 늘 그렇듯 그저 묵묵하게 일방적으로 쏟아 내는 미운 말들을 그저 듣고만 있었고 미안하다고 그랬다.
"그땐 다 그래, 돌 무렵 아이 키울 땐 그냥 그러는 것 같아. 하루 종일 애한테 시달리고 애 자면 들어오는 남편이 어디가 예쁘겠어. 내 마음과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나를 돌볼 틈도 없는데 남을 사랑할 틈이 어디 있겠어. 그런데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좋아져, 조금만 더 참아봐. 견뎌봐."
나만 유별난가 싶은 상황에서 나보다 앞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주변 사람들의 말은 하나같이 비슷했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코로나 시국에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회의하고 일하는 남편이 참 고맙고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네,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짠한 사람.
그렇게 마음에 연민이 싹트고 있었다.
'나 힘든 것만 생각나 참 미웠는데 당신도 아빠가 돼 고생이 많지, 여보 당신도 참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제 나를 돌볼 틈이 생기니 남편을 이해하고 다시 사랑할 틈도 생기나 보다.
미운 사람 피할 수나 있으면 다행이지,
그럴 수 없으면 사랑해버리는 게 어쩌면 속 편한 일 아닌가 싶다.
미워하는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쓰이니,
그냥 편안하게 사랑해버리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어쩌면 정말 그게 더 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