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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욱 Jul 14. 2020

세 번의 밤, 세 곳의 호텔에 머물며

두서없는 일기에 가까운 글입니다

세 번의 밤을 세 곳의 호텔에서 머물렀다. 마지막 날 밤인 오늘. 조금 더 풍부하고 온전하게 주변의 것들을 놓치지 않으며 살고 싶다는 문장을 얻었다. 이건 원래부터 가슴에 품고 살았던 '잘 먹고 잘 놀고, 잘 벌기'와 닿아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그렇지. 나는 나다.) 그래서 뭐가 좋았냐 묻는다면, 평소보다 훨씬 오감을 곤두세우며 온전히 내 주변 환경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호텔에 묵는 건 돈을 내고 잠시 내 공간을 사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딛고 있는 이 공간이 값어치를 하는가? 를 예민하게 관찰하게 된다. 배정받은 객실의 사이즈, 뷰, 층수부터 객실 청소상태나 복도에서 나는 향기까지. 나에게 닿는 모든 접점이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이 된다. 어떻게 다른 경우의 수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지 느껴보고 싶었고, 그래서 매일 공간을 옮겼다. 일부러 가격대도 다른 곳으로 선정했다.


길게 모든 걸 나열하긴 힘드니까 적당히 생각나는 만큼만 꺼내보기.



DAY01 글래드 라이브 강남 (토-일 92,000원)

모텔보단 훨씬 훨씬 좋지만, 어딘가 모르게 모텔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금은 가볍다. 하지만 하만카돈 스피커가 다해낸다. 이건 글래드 라이브의 젊고 활기찬 정체성을 아주 잘 살려주는 핵심 포인트다. 실제로 방에 있는 내내 음악을 틀어뒀고 어딘가 2% 부족한 느낌을 꽉꽉 채워줬다. 바퀴 달린 넓은 책상이랑 침대 옆에 놓인 단단한 빈백도 좋았다. 건식 세면대가 아주 넓어서, 내가 갖고 온 물건들을 가지런히 놓아두기도 편했다. 주로 호캉스 온 여자 그룹이나 커플 손님들이 많았다. 남자끼리 호캉스 온 그룹은 보지 못했다.





스피커는 페어필드 기본템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DAY02 페어필드 서울 영등포 (일-월 64,000원)

이름답게 가격도 페어하고, 객실 사이즈도 페어하다. 딱 필요한 것만 최소로 갖춘 느낌. 둘이 오긴 확실히 좁고 동선이 불편하다. 하지만 부담 없이 혼자 와서 쉬기에는 매우 적절하다. 침대가 아주 좋다. 글래드호텔의 침대보다 조금 더 푹신한 느낌. 킹 베드에 놓인 베개 4개에 파묻혀 자는걸 내가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합리적인 가격 덕분인지 주말에는 거의 풀 부킹 상태였다고 한다. 손님들의 나이대와 방문 목적이 글래드호텔에 비해 조금 더 폭넓은 느낌. 호화로운 호캉스를 기대하기엔 확실히 부족한 면이 있는 곳.






DAY03 코트야드 보타닉파크 (월-화 198,000원)

가장 많이 기대했고, 가장 좋았던 곳. 객실 통유리에 가득 찬 서울식물원 뷰를 보면서, 미친척하고 하룻밤 더 있다 갈까 잠깐 고민했다. 이런 작업실을 갖고 싶단 생각을 했다. 저녁 시간에 라운지에 준비된 간단한 음식과 술은 꽤나 준수했다. 맛의 레이어가 켜켜이 쌓인 미슐랭 음식의 느낌은 당연히 아니지만, 적당히 기분 내기엔 충분한 정도. 준비된 화이트 와인이 좋았다. 침대는 페어필드의 것과 거의 비슷하거나 같은 정도이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베개 4개에 파묻혀서 잘 예정이다. 공항 근처라 공항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그래서 좀 더 해외여행 간 기분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찾는 손님들의 나이대도 이전의 곳들과는 다르게 조금 더 높은 편으로 추정된다. 3-4-50대 손님들이 많아 보인다.


이번 여행에서도, 진짜 내가 좋아하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해가 갈수록 내가 나를 점점 더 또렷하게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든든하다. 복잡한 계획 짜기 싫고 멀리 움직이기도 귀찮다, 싶을 땐 호텔에 머무르는 것도 좋은 선택지라는 결론도 얻었다. 자주 생각날 것 같다. 어쩌지. 열심히 돈 벌어야 하는 이유도 챙겼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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