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쓸개 없는 여자가 되다
도대체 '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여러 병원을 돌고, 검사를 해야 했던가... 이게 그렇게 심각한 질병도 아닌데 말이다. 한국에서는 과연 담석증을 진단받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하다.
결국 나는 외과의사의 전화를 받은 그다음 주 바로 수술에 들어가게 됐다. 내 인생 첫 수술을 말이다. 그것도 미국에서... 다행히 마지막까지 응급상황은 피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안도스럽기도 했다.
병원에서 접수를 마치고 피를 뽑고 수술 상담을 했던 외과 의사를 기다렸다.
수술을 위해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머리와 신발 커버까지 신으니 영락없는 환자 꼴.
두려우면서도 옆에 당시 남자친구, 현재의 남편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 머나먼 미국 땅에서, 가족도 없는 이곳에서 혼자 수술을 받았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물론 친구가 함께였겠지만, 내가 무섭다고 징징댈 수도 없고, 오랜 시간을 빼야 했을 친구에게 미안함도 있었을 터. 그리고 수술 후 회복 과정까지 생각하면, 혼자서는 해내지 못했을 것 같다.
얼마 후 외과의사는 나를 보러 왔고, 미국인들이 그렇듯, 가벼운 스몰톡과 농담을 하면서 나의 긴장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얼마 뒤, 마취과 닥터도 직접 와서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확인했다. 이때 의료진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환자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저기... 선생님, 그 쓸개에 있는 돌멩이 말이에요... 수술 후 버리지 말고 저에게 주시면 안 될까요?
Why not? It's like a souvenir!
안될 건 없죠. 수술 기념품으로!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다. 병원 이동 침대에 뉘어진 상태에서 TV로만 보던 수술실 문과, 마침내 도착한 수술실에서 보이는 차디찬 장비들, 시퍼런 불빛까지...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추위 때문인지 덜덜 떨고 있는 나에게, 수술 전 만났던 마취과 닥터가 말을 걸었다.
긴장되죠?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긴장을 좀 덜게 해 줄게요.
이게 수술실에서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저 말이 마취한다는 뜻인지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수술은 잘 끝났어요. 혹시 통증이 있나요? 지금 그냥 약을 줄까요?
YES!
이 말을 남긴 채 나는 다시 꿈속 저 멀리로... 사실 당시 통증은 느끼지 못했는데, 현실과 마취 사이를 오가던 와중에도 아플까 무서워 약을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ㅋㅋ
그다음 기억은 병실에 돌아온 뒤 누군가가 내가 먹어야 할 약과 진통제에 대해 설명하던 상황이다. 그녀는 아주 빠른 속도의 영어로 블라블라 하는데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남편에게 "방금 뭐라고 한 거냐, 이해했냐"고 물었다. 다시 한번, 영어 하는 남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수술은 복강경으로 진행되었고, 당일 퇴원이었다.
나 근데, 퇴원해도 괜찮은 거야? 전신 마취까지 하고 수술했는데...
심지어 퇴원할 때 간호사는 수술하느라 고생했으니 저녁에 맛있는 걸 먹으란다.
엥? 나 수술했는데 죽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수술 후 통증은 걱정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물론 수술했으니 어느 정도는 아프고, 체력도 많이 빠졌지만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
병원에서는 힘이 들어도 어느 정도 움직여야 빨리 회복된다고 해서, 약간 걸을 수 있게 된 후로는, 아파트 1층 주차장을 남편 부축을 받으며 한 바퀴, 그다음 주는 두 바퀴씩 돌았다.
회사를 나가기까지는 2-3주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수술 후 외과 의사를 처음 만나러 간 날!
Here's your souvenir!
기념품이에요. :-)
내 쓸개를 가득 채우고 있던 돌멩이들... 와... 너네들 어떻게 하다 거기 들어가 앉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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