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았지만 완전 다른 우리
세상에 모든 커플들은 수많은 이유로 다투고 화해를 거듭한다. 성격차이,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 갈등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 경제관념의 차이... 등등.
거기에 우리는 하나의 차이가 더 있었다.
문화 차이
우리의 첫 싸움
인기 넷플릭스 시리즈인 'Stranger Things'의 한국어 제목인 '기묘한 이야기' 번역을 두고 어이없는 말다툼이 벌어졌다.
남편: Technically, 제목 번역이 잘못됐어.
나: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나 기자였을 때 기사 원문 번역을 많이 해야 했잖아. 이걸 '잘못됐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
남편: 아니 그래서 내가 'Technically'라고 했잖아.
나: 아니 근데, 번역을 할 때 직역을 하는 게 다 옳은 게 아닐 때가 있어. 그 문화적 배경을 봐야 하고, Audience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고려해야 하고...
남편: Technically라는 뜻을 잘 모르는 거 같은데? 당연히 번역을 할 때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지. 근데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 'Technically' 잘못됐다고.
나: 알아. Techinically의 뜻은... 근데 내 말은 있는 그대로 번역을 한다는 게 다 정답은 아니라니까?
남편: Techincally라는 뜻을 모르네...
이 정도면 성격차이인가? ㅋㅋㅋ
어떻게 보면 요지는 둘 다 같은데, 약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이렇게 어이없는 주제로 참 많이도 싸웠다.
이번 경우만 보자면, 나는 Technically라는 뜻을 모른다는 말에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나 안다니까!!! 근데 그 말이 아니라고!!!"로 우겼고, 남편은 "Technically라는 뜻을 알면 네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라고 응수했다.
우리는 결국 씩씩거리며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남편의 친구들을 만나면 벙어리가 되는 나
남편의 친구들은 모두 2세다. 처음 친구들을 소개받을 때 엄청난 부담감이 밀려왔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학창 시절 그리 멀리했던 Fob 아니던가.
이제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도 아니고 더 이상 '너는 Fob, 나는 2세' 라며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 테지만, 'Fob인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 때문이었던지 친구들을 처음 만난 날, 나는 거의 몇 마디 하지 못했다.
남편은 아직까지도 내가 남편의 친구들만 만나면 '정말 조용하다'며 눈치를 본다. 어쩌겠어... 뭔 얘기를 하는지 알아듣기도 힘들고, 대화에 끼기는 더 힘들고, 어색한 콩글리쉬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창피한 것을...
남편은 모두가 가족이 같이 만나는 모임인만큼, 나도 함께 하길 바라지만, 내가 불편할까 봐 눈치를 보고, 나는 남편을 위해 같이 참석은 하지만 매번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약간의 긴장감이 계속 흐르는 것이다.
이건 언제 극복이 가능할까?
선물을 돈으로 준다고?
남편은 선물을 돈으로 주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부모님들께 선물 대신 용돈을 드리고 원하시는 것을 사시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에 비싼 돈을 쓰는 것보다, 필요한 것을 직접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실용적이라는 한국인 마인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결혼식 때도, 돌잔치 때도 각종 이벤트에 현금을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남편은 돈을 준다는 게 약간은 낯설고, 성의가 없게 느껴진다고 했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결혼식이나 베이비 샤워 때 현금 대신, 호스트가 원하는 선물 목록(Registry)을 만들어 게스트들과 공유하고, 그중 하나를 골라 선물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아마도 돈을 준다는 개념 자체가 다소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축하의 의미보다는 거래처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하는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시부모님께 한 번도 용돈을 드린 적이 없다. 대신, 필요하실 만한 물건을 찾아 매번 선물로 드린다. 다만 미국에서 한국으로 선물을 보내는데 생각보다 많은 제한이 있어, 원하는 선물을 제대로 보내드리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여전히 이 문화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 같진 않지만, 어느 정도 돈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의 '낯섦 정도'가 약해진 듯하다.
영어와 한국어로 싸우는 우리
우리는 싸울 때 이중언어가 오간다. 화가 나면 남편은 영어로 속사포처럼 쏘아대고, 나는 한국어로 맞받아친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온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만큼은 상대방이 뭐라고 말하는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경청'의 단계를 건너뛰게 된다.
앞서 언급한 'Technically' 사건 이외에 직접적인 언어 문제로 인한 큰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언어는 항상 늘 어떤 충돌이든 그 안에 존재했다. 특히 나는 영어를 못하는데 대한 자격지심과 방어기제가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든 언어와 관련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문화 차이로 인한 우리 둘 사이 가장 큰 갈등은 결혼을 결정하기 전이었다. (아래 포스트에서)
https://brunch.co.kr/@freshoffthebae/27
서로 몇십 년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맞춰가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속에서 살아온 우리는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깊게 서로에 대한 차이를 마주해야 했다. 때로는 오해로, 때로는 자격지심으로, 그리고 가끔은 사소한 차이가 큰 충돌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불쑥불쑥 예상치 못한 문화차이로 인한 충돌의 순간이 오긴 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가볍게 여길만한 장애물은 아닐지 모른다. 우리는 잘 극복했고, 극복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간혹 문화차이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이나 사람들을 보면 '참 힘들었겠구나,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잘 극복하고 있으니, 우리도 대단한 건가? ㅋㅋㅋ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한국인과 미국인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남편과 Fob 중에서도 Fob인 나와의 교차점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Zdeněk Macháček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