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밍 Oct 08. 2022

실례지만 어데 최씹니까


당근을 하며 기억에 남는 거래가 있다. 바로 우리 아파트 같은 동 주민과 했던 거래다. 아기 젖병 꼭지가 남아서 내놓았는데, 문고리 거래를 하려고 주소를 알려줬더니 같은 동에 살고 있다는 답이 온 것이다.



뜻밖의 우연, 괜히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더 해보니 그 이웃주민은 얼마전에 셋째를 낳았다고 했다. 같은 아파트, 심지어 같은 동에 살고, 세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은 내 마음에 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뒤로도 젖병꼭지, 아기옷, 동화책 등을 나눔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살가운 성격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에게 먼저 나서서 말을 걸고 선뜻 나눔을 제안하지 않는다 보통은.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라는 인식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냥 근처 주민도 아니고 같은 동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아기를 낳은지 얼마 안된 엄마라는 사실은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않은 사이인데도 이유 없는 친근감을 느끼게 한거다.



실례지만 어데 최씹니까

'우리'의 강력함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잘 나타난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최익현은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같은 경주 최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때는 조폭과 한패가 되고, 어떤 때는 검찰과 한패가 된다. 그런데 사실, 같은 경주 최씨라는 점만 빼고 보면 이들은 생판 남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통분모가 단 하나라도 존재하는 이상 더이상 남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거래를 할때 상대방과의 공통점을 찾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단순히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만으로 '남'이 받을 수 없는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다. 심지어 공통분모는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고향, 성별, 직업, 지역, 학교, 심지어 MBTI까지도. 같은 인간인 이상 열심히 찾는다면 어떤 공통점 하나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의 조건 어느 하나도 바꾸지 않은채 더 유리한 거래를 할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절실함의 다른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