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손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자 애들의 손바닥을 펴서 내 손에 붙이고 조금이라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손 끝까지 힘을 빡 넣어 펼쳤다. 왜 때문인지 열심히 크기를 재고 다녔고, 내 손이 누구누구 보다 크다고 큰 소리로 자랑하고 다녔다.
손이 크는 것만큼 키가 무럭무럭 자랄 때였다. 손가락을 꺾어 더 큰 소리가 나면 이기는 게임을 하고 다녔다.
나의 큰 손이 처음으로 부끄러워진 건 대학에 와서 연애를 시작하고부터이다. 남자 친구와 처음으로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회가 왔는데도 손을 쉽게 펼 수 없었다. 크고 굵은 손이 부끄러워 항상 주먹을 쥐고 다녔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손은 이런 손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말았다. 너무 늦게. 그 후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도 손이 창피했고, 상대가 묻지 않았는데도 내쪽에서 먼저 내 손 참 크지, 손이 못 생겼지 하며 스스로 깍아내렸다. 어떤 이에겐 손을 다 잡게 하지 못하게 하고 검지 손가락이나 새끼손가락 하나만 잡게 하기도 했었다.
친한 여자 친구 중 한 명이 내 손을 잡고 걸으며 “니 손 잡으면 남자 손 잡는 거 같아서 좋아”라고 말하길래 “야, 돈 내고 잡아” 하고 웃어넘겼지만 기분이 마냥 유쾌하진 않았다.
그렇게 내 손은 나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며 오래 같이 지내왔지. 내가 필요한 일은 손이 다 해주는데. 당장 손 없으면 밥도 못 먹는 주제에.
요즘 나는 내 손이 예쁘다. 길을 가다가도 손을 펼쳐 요리조리 보며 예쁘다고 생각한다. 열 번 중에 한 번은 어쩔 수 없이 크기를 체감하고 슬그머니 다시 접긴 하지만, 내가 자꾸 예쁘다고 해주니 손이 점점 더 예뻐지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 같다.
오늘은 회사에서 1톤 트럭 두 대에 실은 박스를 모두 내려서 옮겼는데, 역시 손이 크니 일이 쉽고, 빠르고, 심지어 남보다 더 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니까.
어렸을 때 그렇게 커지고 싶어 안달복달하더니 기껏 크게 해 줬더니 이따위로 대한다고 얼마나 욕 했을까. 미안하다 손아.
그리고 어제 영상보다 알았는데 김연경 선수도 손이 엄청 크더라고. 나 심지어 손 큰 거 자랑스러워지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