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단위의 계획

by 피츠로이 Fitzroy

29살의 12월 31일, 멜버른 크라운 카지노 앞에서 불꽃놀이를 보면서 30살을 맞았을 때만 해도 내 30대가 이 정도로 좋을지 몰랐다.

39살이 6개월도 안 남은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는 나의 30대는 인생 어느 시기 보다도 너무 좋았다. 물론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뼈저린 후회와 지독한 실망과 눈물 나게 슬픈 날들이 존재하지만(ㅋㅋㅋㅋㅋ), 나의 행복을 바깥에서가 아닌 내 안에서 찾고 그것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던 건 서른다섯이 넘어서부터 였다고 생각한다. 나 행복하다는 말 자주 하는 사람이 됐다고.


29과 30은 너무 달라 보였고, 39와 40은 또 너무 다를 것 같다.

충동적으로 자유롭게(혹은 무모하게) 살아온 것도 인정하고, 그 결과는 늘 돈 없음, 집 없음, 단절된 경력, 불투명한 미래로 다가 오지만 나는 여전히 내일보다는 현재가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

39살의 마지막 날, 그리고 40살의 첫날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맞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호주에서 지내던 때가 살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고 또 그런 장소를 찾고 싶었다. (왠지 한국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은 좀 허세 같기도 하지만) 돈 모으는 거 제일 못하는 내가 그날을 위해 돈을 모았고, 나의 새로운 40대를 기념하기 위해 아무리 못해도 한 달 이상은 있어야 할 거 같아 직장도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그날까지, 올해 12월 말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지.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에서 한 달 이상 머무르며 나의 40대를 맞이할까 한참 단꿈에 젖어있어야 하는데 거지 같은 코로나 때문에…. (이런 상태로라면 격리를 각오하고서라도 가야겠지 생각 중)ㅜㅜ

직장 그만두고 해외 가서 40살 돼가지고 한국 돌아오면 너 뭐할래 하면 대답이 궁하다. 그때 가면 또 뭐가 되어 있겠지. 부와 명예를 누리는 성공한 사회 구성원은 못 되고, 행복과 웃음을 누리는 (약간? 그래 많이 초라한) 하위 몇 퍼센트가 되겠지. 뭐 그래도 괜찮지 않나요.


_나 회사 그만두는 게 제일 공포스러운 남편아 내가 이런 사람이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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