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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와우 Aug 22. 2019

우아한 뉴요커가 되기는 힘들어

-뉴욕 날씨- 편

뉴욕의 날씨는 서울과 거의 비슷하다. 서울이 무더위를 지날 땐, 뉴욕도 찌는 듯한 더위가 오고, 서울이 비가 내릴 땐, 뉴욕도 대부분 비가 내린다. 서울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 톡을 하다 보면, 뉴욕이랑 서울 날씨가 참 비슷하다는 걸 자주 느낀다. 더위의 종류도, 무덥지만 습해서 불쾌지수가 높고 땀이 나는, 딱 그 더위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뉴욕 맨해튼의 대지 모양이 한국과 닮았다. 북쪽이 대륙과 연결되어 있고, 삼면이 바다 혹은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렇게 서로 닮은 대지의 특성이 분명 두 장소의 비슷한 날씨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뉴욕과 서울의 날씨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람이다. 한국은 바닷가 부근만 바람이 많이 불지만, 뉴욕은 그에 비해 크기가 작아 전체적으로 바람이 많이 분다. 뉴욕에 빌딩들이 세워지기 전에는 바닷가 도시였고, 뉴욕이 무역으로 중요한 지점이 된 이유 또한 바다에 가깝게 접해있기 때문이었다. 해변이 되어야 할 곳을 우리가 메워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거센 바람이 모든 매연과 먼지를 쓸어가 버린다. 그래서 뉴욕에서 미세먼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잠시 한국을 다녀온 지인들은 항상 이에 대해 얘기한다. “한국 다 좋은데, 미세먼지 너무 심하더라. 여기가 공기가 참 좋아!” 거센 바람과 맑은 공기 덕에 뉴욕의 하늘은 아주 아름답다. 해변가에서 일몰을 볼 때의 그 아름다운 색감을 뉴욕 하늘은 다 갖고 있다. 뉴욕은 하늘을 보는 것을 잊었던 나에게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든 곳이기도 했다. 나는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 줄, 뉴욕에서 다시 깨달았다.


그림 같은 뉴욕의 구름과 하늘


하지만 뉴욕 날씨의 장점은 맑고 깨끗한 하늘, 이것 딱 하나다. 뭐 딱히 단점이라고는 못하겠지만, 뉴욕 날씨는 변덕이 아주 심하다. 이 또한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변덕이 어느 정도냐 하면, 맑고 쨍쨍하던 5월 어느 날, 나는 플랫아이언(Flatiron Building) 근처에서 볼 일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핸드폰 알림이 울린다. ‘Warning’이다. ‘이 날씨에 갑자기?’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북쪽 하늘에서 회색 구름이 몰려왔다. 정말 순식간이어서 영화 ‘투모로우’를 보는 듯했다. 길을 가던 사람들도 두리번대며 웅성거렸고, 어떤 사람들은 몇 번 이런 일을 겪었는지 앞도 안 보고 뛰었다. ‘뭐지? 재난인가? 단순한 날씨 변화인가?’ 하는 순간 검은 하늘 사이로 비가 폭포같이 쏟아졌다. 그 이후로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급작스런 폭우로 지하철과 교통은 마비되었다. 이후에는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 사무실에 있다가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린다. 이런 변덕 때문인지 뉴욕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냥 비를 맞는다. 우산을 일일이 챙기기 귀찮아서이기도 하지만  바람이 강해 우산이 소용없는 경우도 많다. 또, 깜빡하고 아침에 날씨를 챙기지 않았으면 어쩔 수 없이 맞아야 한다. 뉴욕에서는 강인하거나 꼼꼼한 자가 살아남는다. 우아한 뉴요커가 되기는 생각보다 힘들다.


뉴욕에서 날씨 어플은 필수다. 아무리 맑은 날이어도 비 표시가 있는 날은 급작스런 빗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며칠 뒤의 날씨는 신뢰도가 조금 떨어진다. 한 번은 이사를 해야 해서 날씨를 체크했는데, 토요일에 비가 온다고 해서 일요일로 이사 날짜를 잡았더니, 토요일에 비가 안와 다시 날씨를 체크해보니 일요일이 물바다였다. 결국 비를 쫄딱 맞으면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들 때문에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예민하신 분들이 뉴욕에 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날씨 어플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되고,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측은 어느 정도 정확하니 수시로 체크하면 크게 도움이 된다.


뉴욕의 겨울, 유명하지 않은가? 지금은 온난화 현상도 진행되어 오고 있고, 빌딩 숲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인지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1800년대, 1900년대에는 겨울에 불이 나면, 소방관이 불을 끄려고 내뿜는 물이 전부 얼어붙어 애를 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추위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날씨와 교통을 생각하니 한국의 편리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교통량이 너무 많아 맨해튼 통행료까지 부과되는 현실인데 도로 밑에 난방 따위는 없다. 차들에서 나오는 열기가 눈과 얼음을 녹일 뿐. 보행로도 마찬가지로 그렇다. 사람들의 발로 눈을 녹인다. 겨울에 갑자기 폭설이 온다면 맨해튼 교통마비는 안 봐도 뻔하다. 평소 $30 미만으로 나오던 택시비는 급작스레 $200이 훌쩍 넘는다. 택시비가 비트코인 급이다. 작년 11월 초 어느 겨울날 퇴근 무렵, 때 이른 폭설이 내렸다. 나는 마침 다음날 중요한 아침 미팅으로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11시에 퇴근했다. 그런데 그 날 정시 퇴근을 했던 친구와 집에 도착한 시간의 차이는 고작 30분이었다. 다음날 아침 미팅에서도 온통 폭설 얘기였다. 택시에서 3시간 있었던 얘기, 코너를 도는 데 1시간이 걸린 얘기 등등 처음으로 야근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또, 뉴욕의 겨울은 길다. 한국과 뉴욕은 사계절이 뚜렷한 편인데, 이상하게 뉴욕의 겨울은 조금 더 길다. 4월까지 눈이 온다. 뉴욕에서 첫 해를 보낼 때 4월에 내리는 눈을 보고 ‘이게 이상 기운인가?’ 싶었는데 그다음 해에도 4월에 눈이 조금 내렸었다. 그래서 뉴욕 사람들이 ‘뉴욕의 겨울은 참 길어.’라고 하는 게 이해가 갔다. 이렇게 긴긴 겨울이 있기에 이 겨울을 지나고 피는 5월의 꽃은 더 아름답다. 겨울 동안 움츠렸던 뉴요커들의 식욕도 폭발해서 봄이 오면 뉴욕의 레스토랑들은 문전성시가 된다. 게다가 5월은 ‘졸업의 달’로 대학생들의 졸업식이 주말마다 열리고, 가족과 친구들이 뉴욕으로 몰려든다. 이 뿐인가? 졸업한 학생들이 일을 찾아 뉴욕으로 건너오기도 한다. 그래서 5월은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자 가장 붐비는 시기이다.


해질녁(좌)과 밤새 비가 온 뒤 새벽 하늘 무지개(우)


이 시기가 지나면 여름이 온다. 뉴욕의 여름은 무덥고 습하며 비가 자주 내린다. 한국처럼 에어컨이 필수다. 여름에 가장 최악인 곳은 지하철이다. 지하철 내 냉방은 천국이지만 지하철을 기다리기까지 지하철역의 더위는 지옥의 찜질방 수준이다. 그러나 뉴욕의 찌는 여름은 3-4주 정도뿐인 것 같다. 굳이 겨울에 빗대자면 여름은 짧다. 아름다운 가을 또한 짧다. 순식간에 단풍이 물들고, 또 순식간에 낙엽으로 떨어진다. 뉴욕에서 가을을 보낸다면 센트럴 파크를 추천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뉴욕 여행으로 가장 추천하는 시기는 5월 말-6월 초와 8월 중순-10월 정도까지이다. 그러나 뉴욕에 올 땐 짐을 현명하게 꾸려야 한다. 초겨울에도 어제는 반팔, 오늘은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얘기지만, 이를 알고 온다면 급작스런 변화에도 썩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뉴욕의 아름다운 하늘과 노을에 대해 언급했는데, 노을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새벽하늘이다. 검은 어둠에서 깨어나 분홍빛의 하늘로 물들여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보다 상쾌하고 아름다울 수 없다. 혹시나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면 여유 있게 일출을 즐겨보시기를 바란다. 뉴욕에서 즐기는 고요함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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