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타임 해제가 우리에게 주는 것
핸드폰 시계와 부엌의 오븐 시계가 한 시간 차이가 난다. 둘러보니 거실에 놓인 탁상시계 두 개도 시간이 한 시간 빠르다. 뭔가 이상함을 느껴 확인해 보니 11월 3일은 서머타임이 해제가 되는 공식적인 날이다. 오전 7시는 오전 6시가 되었다. 시간이 한 시간 빨라진 것이다. 그 말인즉슨, 오후 6시가 되면 해가 보통 지곤 했는데 5시만 되어도 깜깜할 것이고, 해가 뜨는 시간도 더 빨라지겠지만 이는 겨울이 더 깊어질수록 별 차이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며칠 전 브런치 글들을 둘러보다가 <미국 사람들은 대체 퇴근 후 무얼 할까>와 같은 느낌의 글을 봤던 것이 기억이 난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어마어마하게 큰데 대부분 시골이다. 이때 시골은 한국의 시골과는 영 다른 ‘진짜’ 시골이라는 것이 포인트다. 한국의 시골은 예전과는 크게 달라져서 곳곳에 편의점도 있고, 조금 읍내로 나가면 간판에 불이라도 켜져 있고 늦게까지 영업하는 식당들도 있지만 미국의 시골은 해가 지면 암흑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가로등도 많지 않다.
미국에서 5년을 살고 발령받아 다시 한국으로 갔을 때 기분을 잊지 못한다. 가족과의 재회, 시차의 차이로 시간 맞춰 가끔 하던 전화통화, 각종 그리움과 외로움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과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내 귓속으로 때려 박히는 모국어는 아무리 삭막한 도시에 있더라도 그에 적합한 안정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밤거리를 걸어도 안전하다는 느낌, 꺼지지 않는 편의점의 불빛.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혼돈의 시기를 지나 안정기가 되고 올바른 수면 교육을 시키기 위해 9시 즈음 자려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 친정집에 갔을 때는 더 심했다. 역세권이라고 늘 좋아했던 친정 부모님의 집은 빛공해와 편의점 앞 노상, 치킨집, 호프집 등에서 들리는 밤늦게까지 들리는 말소리, 술주정 소리(중간중간 들리는 “카악 퉤!” 소리는 덤)로 인해 아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28층이었던 우리 집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불을 다 꺼도 완전히 어둡지 않았다. 빛 공해가 무엇인지 그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주변 아이 엄마들에게 물어봐도 9시 이전에 아이가 잔다고 말하는 엄마는 거의 없었다. 다만 놀랐던 것은 남편의 직장 동료들의 사례였다. 대부분 미국 사람으로 이루어진 그룹이었는데 8시에 아이들이 잔다는 유니콘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게 진짜인가 싶었다. 8시에 자려면 7시부터 잠자리에 들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7시에 잔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직장이 끝나는 6시, 집에 오면 대부분 7시이고 그때 저녁을 먹기 시작할 것이다. 소화시키고 정리를 하고 내일을 위한 간단한 준비 등을 하다 보면 10시가 되는 건 금방이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은 사치이며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아이가 만 세 살이 되고 나서, 그러니 햇수로는 아이와 함께한 지 4년 차에 다시 미국의 소도시에 와서 살고 있는 요즘은 8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점점 당연해지고 있다. 6시에 캄캄해지고 더 이상 외출할 일이 없다는 것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는 나날들을 의미한다. 이제는 서울의 꺼지지 않는 빛이 무얼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퇴근하지 못하는 사람들, 나 대신 새벽을 지키며 계속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저녁이 보장되는 삶 그럼에도 가끔은 해가 빨리 져 야속한 하루, 밤이 너무 길어 어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시간들이 점차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