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우정을 위한 마음가짐
세상에는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그것도 좀 많이. 특히 크게 다를 것 없는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을 지나고 나면 결혼을 하며 각자의 삶이 다양한 모양으로 펼쳐지는 것을 목격할 때가 많다. 이옥선 저자의 <즐거운 어른>에서 나오는 “결혼이란 둘이서 배를 타고 무인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라는 문장처럼 결혼은 때로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또 다른 세계로의 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혼 이후 새로운 첫 챕터가 펼쳐진다면 아이의 출생 이후 두 번째 챕터가 시작된다. 아이와 함께 하며 나의 삶의 모습도 그에 맞춰 조금씩 천천히 변화하는 중이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맘카페를 통한 또래맘들과의 정보 공유를 통해 얻는 삶은 아직 미지의 세계이다. 도대체 이 물건들이 내 아이에게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고민고민 끝에 들여놓는 물건들로 조금씩 채워가는 아이의 보금자리, 출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이 이 세상을 구성한다.
아이를 낳고 어떤 사람들은 ‘조동’이라 불리는 조리원 동기들이 생기기도 한다. 같은 달에 태어난 엄마들과는 공통점이 아무래도 많을 수밖에 없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한 달 차이도 크기 때문에 각자의 시기에 따른 적합한 정보공유는 이제 필수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나는 코로나 베이비인 관계로 조리원 동기 엄마들이 없었지만 주변 엄마들을 보면 조리원 동기들과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모습을 종종 본다.
어린이집/유치원/각종 학교에서 만난 엄마들과의 만남은 는 또 다른 성격의 그룹이다. 이 시기의 엄마들과는 아무래도 ‘할 얘기’가 많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며 또래 집단의 아이와 ‘친구’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내 아이가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면 나 역시도 그 친구 엄마와 자연스레 친구가 되기도 하는 것도 이때가 가장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위에서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라고 쓰긴 했지만, 사실 친구가 되는 건 그다지 쉬운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것, 더 나아가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귄 지 얼마 안 된 새 친구라는 것도 인생에서 계속 생겨나죠.
그런데 그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지만 가능한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릴 때는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학교 같은 공간 안에 서로 같이 속해있으면서, 같이 부대낄 수 있는 환경 때문에 그게 주어졌다면 어른이 되고 각자의 생활이 있을 때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노력을 해야지 유지되는 게 우정이기도 하죠."
-<여둘톡, Ep. 26 친구 사귀는 법 중>
‘엄마’가 되었을 때 엄마들의 우정은 어떻게 시작될까?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지켜봐서인지 나 또한 저절로 엄마들과 친해지고, 엄마들과 모임을 형성해서 같이 놀러 다니는 막연한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들 모두 각자 나름대로 ‘아주’ 바쁘고 아빠들끼리 친해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정말 유니콘 같은 이야기였던 것이다. 아빠들은 대부분 주말이 되면 쉬고 싶고, 또 다른 사회생활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약 1년 반의 시간을 보내고, 현재 미국에서 프리스쿨 3개월을 다니고 있는 우리의 경우 이렇게 다른 엄마(혹은 가족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크게 나누어보자면 이러하다.
1) 할머니들끼리 먼저 친해진 경우
2)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동네 엄마와 친해진 경우
3) 먼저 말을 걸어서 친해진 경우
인 것 같다. 1)의 경우는 특이한데, 두 아이가 안 그래도 굉장히 친했는데 두 아이 엄마/아빠 대신 할머니들이 늘 하원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데리러 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들끼리는 말을 쉽게 튼다. 그러다 보니 고향도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경남과 부산), 아이들끼리도 친하다 보니 늘 어린이집 끝나고 동네 한 바퀴 돌며 간식도 나눠먹고 서로 정이 들게 되었다. 그 이후 할머니들이 양쪽 엄마들에게 "서로의 성향이 비슷한 것 같으니 한번 만나서 친해져 보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이후 우리도 친구가 되었다.
2)의 경우는 동네 엄마였고, 다른 어린이집이었지만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만나 우연히도 같은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서로 급격하게 친해진 경우였다.
3)의 경우는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동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전무할 때, 쇼핑몰에서 만난 두 아이의 엄마였는데 정보通이었다. 학교 추천부터 어떻게 하면 아이가 필요한 정보를 알 수 있는지 거의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그 후로 프리스쿨에서도 만나게 되었고, 아이들이 같은 반이 되어 서서히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따지고 보면 다 다른 이유로 가까워졌지만 여기에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데일카네기 인간관계론에도 나오는 법칙으로, 우선 기본 중에 기본은 “상대방의 이름을 잘 기억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 살다 보면 각종 이름의 홍수 속에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나의 경우 메모장에 새로 만난 사람이 있으면 가족의 이름을 메모해 놓는 편이다. 언젠가 만났을 때 누구였더라.. 하며 이름이 뭐였죠?라고 묻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사소한 것이지만 상대방의 소중한 것을 기억해 주는 것에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연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은 두 번째이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듣다 보면 취향,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표현하기’이다. 서로 오가는 ‘정’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별거 아니지만 혹시 모르는 마음으로 상대방 아이의 간식도 챙겨가고,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조금 나누어주다 보면 감사함이 싹트게 된다.
위 글에는 쓰지 않았지만 '실패'한 경우도 많다. 몇 번 만나다가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관계도 존재한다. 어쩌겠는가,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로 인해 너무 절망할 필요도 없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엄마가 되며 그 많던 친구가 다 어디 갔을까 싶은 때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내 아이로 인해 새롭게 알아가는 세상에 대한 재미 또한 있다는 걸. 앞으로도 이 재미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유쾌한 엄마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