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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Mar 04. 2024

직접과 간접, 현실과 환상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가여운 것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현실 :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 살았던, 수용소장이었기도 한 '루돌프 회스'라는 인물이 있었던 '공간'을 다룬다. 영화는 수용소 안을 절대로 비추지 않는다. 대신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 공간을 환기시킨다. 담장 밖으로 수용소가 보이는 집들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 예컨대, 가스실에서 희생된(될) 사람의 옷가지를 가져와서 입어보는 장면이나, (자막이 없어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집 안에서 일하는 폴란드 인에게 나지막하게 소곤거리거나, 회스의 아이들이 유리창 너머로 듣는 음성 내지는 총성들이 그렇다. 하지만 수용소 안을 빼고 영화 중반 이후부터 나오는 장면들은 직접적이다. 다만, 그 상황을 묘사하는 방법에는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자신이 맡은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높은 자리의 사람을 동경한다. 음산한 음악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지금 현재 관객이 보고 있는 화면 뒤에 숨은 장면들을 상상하게 한다. 



나는 아리 애스터의 <유전>을 좋아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동진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텍스트 밖'과 '텍스트 안'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비슷한 지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사실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화면 밖과 텍스트 밖을 생각하면 무거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루돌프 회스가 수용소에서 잠깐 나와 베를린으로 향하고, 해가 진 저녁, 어둡고 음산한 복도에 홀로 서 있을 때 구역질을 한다. 그 순간 영화는 현실로 바뀌며, 수용소 박물관을 비춘다. 수 천 개의 버려진 신발들과, 낡은 고문실을 비춘다. 마감인지 개장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공간을 청소한다. 마치 수용소 옆 집에 살았던 여자들이 살림을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이 역시 일이다. 그리고 다시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환상 : 

<가여운 것들>에는 여러 존재들이 나온다. '갓윈'이라는 의사는 이식 분야에 탁월한 솜씨가 있다. 그는 숱한 키메라, 그러니까 개의 머리를 가진 새 내지는 오리의 머리를 가진 개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다리에서 자살한 여자의 몸에, 그 여자가 잉태하고 있던 태아의 뇌를 이식한 '벨라'를 탄생시킨다. 벨라는 몸은 성인이지만, 뇌와 몸의 싱크로문제, 나이 문제로 인하여 말썽을 일으킨다. 그녀는 실험체임과 동시에, 바깥 세계를 탐구하고 싶은 주체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을 탄생시킨 의사품을 떠나 한 남자와 여행을 떠난다. 그러면서 서서히 현실을 경험하고 독립된 개체로서의 발걸음을 디딛는다. 하지만 나는 감독의 전작들인 <킬링 디어>나 <송곳>등이 더 좋았다. 이전의 작품들도 이번 것과 마찬가지로 특수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세계관을 제외하면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곳은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작에선 스팀펑크와 같은 모습들이나, 마치 꿈속에나 나올 법한 공간들이 나온다. 그래서 마치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에 쓰인 SF소설들이 떠올랐다. 역시나 자막이 없는 이슈로 인하여 영화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이전 작보다 주제의식이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되어서 아쉬웠던 것 같다. 그리고 배드신이 필요 이상으로 많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생각한다면 생리적인 그리고 성적인 탐구가 가장 자연스럽고 기초적인 욕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을 너무 자주 등장시켜 오히려 그 의미가 반감된 것 같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직접적인 것보단 간접적인 것들을 좋아하게 됐다. 소설의 작법이나 영화의 서사에 관해서는, 간접적으로 적절히 숨기는 것이 좀 더 세련되고, 더 많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입냄새가 나는 사람에게 껌을 살며시 건네고, 정답을 알려주는 것보다 문제를 풀 수 있는 힌트를 주는 방법들. 그것들은 대상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할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려면, 본인 역시 그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ENDE


사진출처 : 왓챠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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