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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n 13. 2024

Bike

십 년 전 쯤, 혹은 그보다 더 전일지도 모르는 2010년도 초반에 나는 블로그에 사랑을 자전거타기에 비유한 짧은 시를 하나 써서 올렸었다. 그때는 첫 연애를 하기 전이었고 자전거 또한 탈줄 모르던 때였다. 나는 내가 그 두가지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을 내 자신이 자신감의 임계점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넘어져도 훌훌 털고 일어나서 다시 시도하는 것. 내가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것의 칠십 프로 이상은 내가 겁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 시를 쓰기 십 년 전, 우리 가족은 서울에 살고 있었고 우리집은 달동네에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는 오로지 경사밖에 없어서 자전거로 어딘가를 간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었고, 버스가 다니는 도로도 굴곡지고 커브길이 많아 위험했다. 당시에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 씩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이천으로 가곤했다. 서울에 비하면 시내에서 좀 떨어진, 농촌의 모습인 이천의 시골집은 바로 앞에 논이 있었고 뒤에는 밭이 있었다. 땅은 평평했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았다. 아빠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조금씩 자전거를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나는 두발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단 네발자전거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넘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넘어져서 다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고통을 느끼는 것을 피하는 사람이었다. 학교와 학원에서 숙제를 해가는 이유도, 그것들이 '해아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안했을 때 나에게 오는 채벌, 그리고 그 채벌로 인한 신체적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딱 다치지 않는 선에서 자전거 배우기를 멈췄다. 반면 네 살이나 어린 동생은 조금씩 나를 따라잡더니,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자기 몸에 맞는 두발자전거를 타고 시골 길을 돌아다녔다. 


시간이 흘러 지금이 됐다. 강산이 두 번 쯤 변한 시간이 흐를 동안 나는 몇 번의 연애를 거쳤고, 운전면허증을 따고 (두 번 도로시험에서 낙방한 이후에) 두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잊어버린 채 네 바퀴가 달린, 마치 보조바퀴가 달렸던 그 네발자전거와 비슷한 차를 몰고 회사를 다녔다. 독일로 오기 전, 나는 그 차를 친구에게 팔았고 다시 나는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간간히 트램에 나의 이동을 맡기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독일로 올 때 살았던 베를린은 땅이 아주 평평했지만, 나름 대도시인 덕에 차들이 많이 있었고 길을 달리는 자전거들은 너무 빨라서 배울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 자전거 배우기를 유예했다. 그리고 바이로이트에 오고 나서야, 이 처럼 작은 도시-대략 시내 중심에서 주요 포인트까지 자전거로 20분 안에 갈 수 있는-에 살면 버스에만 나를 의지할 수 없음을 여실히 깨달았다. 버스는 같은 노선이 이십 분 혹은 삼십 분에 한 번 정도 왔고, 주말에는 한 시간 간격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한국으로 잠시 돌아가기 전, 나는 누군가가 단체메시지방에 올린 자전거를 구입했고, 2학기엔 꼭 자전거를 배워서 타고 다니니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부로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같은 과의 절친이었던 Berk가 자신이 자전거타기를 가르쳐준다고 나섰고, 그와 세 번 정도 시간이 나는 주말에 만나 자전거를 배웠다. 자전거를 배우면서 나는, 이것을 진작에 어렷을 때 배웠으면 지금 고생을 안할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너무 커버려서 봐주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계속했다. 안장위에서 밸런스를 잡고, 직선으로 달리려 노력했다. 세 번째 수업에서 나는 드디어 그의 도움 없이 자전거에 올라타고 주행을 하고, 좌회전 우회전과 U턴을 해냈다. 그 동안 안넘어졌냐고? 사실 두 번째 수업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길에 마주오는 어린아이와 부딪칠거 같아서 피하다가 결국 넘어져버렸다. 무릎과 팔꿈치에 흉터가 났고 피도 났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국 넘어지는 일은 일어났다. 하지만 결국 오늘 해냈으니, 넘어지기도 하고 그 넘어지기를 넘어 목표에 도달한 경험을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튼, 세 번째 수업이 끝난 하루 뒤, Max, Berk와 수영을 하고 Max의 제안으로 학교까지의 길을 다시 배웠다. 기숙사에 돌아오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들은 내가 자전거 배운것을 기념으로 축하해주겠다며 시내로 가서 케밥을 먹자고 했다. 사실 어제는 축구도 하고 수영도 하고 이미 잔뜩 긴장한 채로 학교까지 자전거로 다녀오는 바람에 힘이 거의 떨어졌지만 약간의 장고끝에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Max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면서 어느 부분이 위험하고 조심해야하는 지 알게되었다. 보행자로 다닐 땐 알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호프가르텐에 들어서고,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에서 자연을 느꼈을 땐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꼈다. 그리고 시내에 들어섰을 땐 마침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고, 그 풍경 또한 너무 멋졌다. 우리 셋은 각자 케밥 하나씩을 먹었다.  내가 독일로 온 이래로 가장 맛있는 케밥이었다. 그 이후 Max는 집으로, Berk는 나를 대리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갔다. Berk는 다른 기숙사에 사는데, 자신의 책임이라면서 같이 와준것이 감사하기만 했다.


오늘 역시 자전거로 학교에 다녀왔다. 걸어가는 것보다 훨씬 빨랐고 효율을 중시하는 나이기에 어쩌면 이제부턴 학교에 갈 때 날씨가 나쁜것이 아니라면 자전거를 타고 빨리 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나는 나의 나머지 자전거 인생동안 몇 번을 넘어지고 때로는 위험한 순간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것들이 자전거를 타기 이전 만큼 두렵지는 않다. 그래도 안전은 중요한 거니까 헬멧도 하나 샀다. Max 말로는 자전거 헬멧은 조금 비싸더라고 좋은 것 사는게 좋다고 했다. Safety First.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다음에 한국에 돌아가면 한강공원에서 따릉이를 타볼 수 있을 것 같다.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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