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내가 친구들에게 자주 말하는 새로운 단어가 있다. 그것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인데, 이 단어는 정확히 조나단 글레이저의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 내가 독일에서 터키인 친구인 Berk와 바이로이트의 극장에 가서 그 영화를 (개인적으로) 두 번째 보러 갔을 때, 나는 그에게 그 영화에 대사가 크게 없어서 보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나의 기억과는 다르게 영화 속 대사는 꽤 많았고, 때문에 나는 물론 같이 간 Berk(독일어 A1수준)도 대부분의 대사를 알아듣지 못했다. 이 상황을 우리는 ‘Zone of Interest’라고 명명했다. 그러니까, 이 단어의 뜻은 자신만 빼고 다른 사람들이 독일어만 해서 마치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기분이 들 때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독일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Berk가 다른 터키 친구들과 터키어로 얘기를 할 때도 나는 그 단어를 말하고, 그 반대의 상황에도 적용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직까지 내가 2024년에 본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영화이야기를 길게 할 생각은 없지만, 가장 소름 끼쳤던 것은 사건을 다루는, 정확히 말하자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인 방식이 아닌 간접적으로 다루면서 동시에 아우슈비츠를 둘러싼 독일인들의 너무나도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악의 평범성과는 또 다른 악의 생활화를 볼 수 있었다.
한편, 제목에 있는 ‘인터레스트’는 ‘흥미’로 생각될 수 있지만, 원작 제목은 독일어 원어인 ‘das Interessegebiet’에서 떠왔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주변 지역의 농지를 몰수하고, 그 지역의 폴란드 인들을 농노로 부리면서 큰 이득(das Interesse)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interest라는 단어는 영화의 상황과도 잘 어울리면서, 실제로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부)과 그 밖의 공간 (수용소 근처 장교의 집, 베를린의 집무실과 화려한 파티공간 등)을 오가며 관객과 등장인물들이 관심을 가지는 공간을 오가게 된다.
악의 생활화를 보면서 요샌 현재의 한국 정치상황을 떠올리게 됐다.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청문회 자리를 보면서 나는 최근, 혹은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증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거짓말(로 추정되는)을 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으로 짐작해 보건대 그들은 그들 때문에 일어난 일들을 책임지지 않고, 그 일 자체를 부정하는 말들을 뱉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며 내 안의 인류애의 좌절을 마주하는 한 편, 굉장한 분노를 느꼈다.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버벅거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이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동요를 하고 있구나를 느꼈다는 것이다. 뭔가 메인 듯한 목소리와 불안한 눈빛들을 보면 적어도 그들의 악이 ‘생활화’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다. 증언으로 위장한 거짓말을 뱉으며 너무나 태연하고 침착하게 말하는 자들은 이미 구제할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르는 무지의 상태. 나는 그것이 무서웠고, 그 느낌은 내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 말미에 갑자기 영화의 배경이 현재로 바뀌면서 보여주는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거기에 진열된 의 상처들과 비극이 겹겹이 쌓인 지층들을 보면서 느꼈던, 과거가 잘못됐을 때 미래가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가와 이어졌다.
또 한편으론 반대로, 종전 이후 그나마도 그들의 악행이 밝혀지며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고 일부나마 벌로서 대가를 받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서, 한국에서도 하루빨리 청산의 날이 다가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