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명 Oct 17. 2022

시작만 하는 사람일까 고민하는 일기

1017 - 연남동에서

재선이와 약속이 있어 일찌감치 - 그래봤자 1시가 지나 카페에 도착했지만 - 연남동으로 나왔다. 실 한 볼을 다 써서 만든 '비니여야 했던 것'은 결국 폐기처리되었고, 나는 결국 좋은 실을 사러 인근 바늘 이야기에 갈 생각이다. 여기는 현경이가 가고 싶다고 했던 곳인데 어쩌다보니 나 혼자 가게 생겼군. 나는 남은 한 시간 정도 동안 빈티지 숍에서 현이의 바지와 내 외투를 조금 둘러볼 것이고, 레이먼드 카버 소설의 쪽글을 감정 위주로 쓸 생각이다. 감상을 썼던 노트를 가져올걸. 요즘은 잊기도 잘 잊고 단순한 계산도 잘 안 돼서 더 의식적으로 머리에 힘을 주려고 한다. 메모장을 쓸 수 있어도 계속 기억하려고 한다든가...뜨개질이 잘못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 결국 끝까지 떴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을 때는 역시 그냥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데, 미련하게 다 뜬 것은 내가 자꾸 뭔가 실패하면 다른 걸 시도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닌가 자괴감이 들어 그런 것이다. 옆 사람들이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드는 듯 했다. 그걸 보며 나는 새로운 사람들이 오히려 편하고, 몇 번 만난 사람들과 무척 어색하다는 걸, 혹은 어정쩡하게 말을 놓고 아는 사이인 사람들에게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결국...시작과 첫인상에만 강할 뿐 알면 알수록 껍질뿐인 사람인 건 아닐까? 언제부터 이렇게 깊숙하게 척하는 사람이었던 걸까. 회사도...다시 돌아가면 되는데 그럴 기회를 준 건데 이전보다 더 잘해내야 나의 이 시간이 당위성을 갖게 되는 것일 듯해 두렵다. 나아져야 하는데...내 삶은 성장의 역사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정말 퇴보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지만 결국은 엉망인 완성품을 얼레벌레 내기만 한다. 오늘은 대성당에 대해 정말 뭐라도 써야지. 

작가의 이전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괴로워하며 일기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