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예약, 맛집, 자전거, 분실물
최근 후쿠오카로 워케이션을 다녀왔다
주요 목적은 아시아 워케이션 프로그램 기획이었다. 일본은 비행시간이 짧아서 말라가와는 다른 강점이 있고, 그 중에서 후쿠오카는 봄/가을 날씨가 온화해서 생활을 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다만 내가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적어서, 이번 워케이션을 통해서 후쿠오카에 대한 경험 데이터가 필요했다. 그렇게 떠난 5박 6일 간의 후쿠오카 워케이션. 나 같은 일본여행 초보자를 위해, 유튜브에서는 자주 언급되지 않는 몇 가지를 공유한다.
유럽이 주 출장지인 나는 현금을 거의 안 가져간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3-5만원 정도 현지화(유로)를 가져가긴 하지만, 그걸 다 쓰고 온 적은 없다. 아주 시골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유럽 도시는 신용카드가 통용된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애플페이가 가능한 곳도 많아졌다.
하지만 후쿠오카는 달랐다. 번화한 중심지에도 카드결제가 안 되는 상점이 많다. 객단가가 높은 고급 음식점, 편의점, 노래방은 카드 결제가 가능했지만, 그 외에는 모두 현금만 가능했다. 물론 신용카드로 편의점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고, ATM기가 있는 편의점이 블럭마다 있어서 실질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첫날은 카드 가능한 음식점을 찾느라 적잖이 고생했다.
나는 미식가도 아니고, 꼭 식사를 정해진 시간에 해야하는 것도 아니라서 식사는 비교적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쿠오카에서 예약없이 식사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출발 전, 후쿠오카 관련 유튜브를 보면 '오픈런' '대기줄' 이란 말이 자주 나왔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픈하기 전에 줄을 서거나, 30분 이상 대기할 것을 각오하고 줄을 서야 겨우 식사를 할 수 있다.
혹자는 유명한 맛집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맛집이라서기 보다는 일본 음식점의 규모 자체가 작기 때문 같았다. 관광객 입장에서 가장 흔한 식당 사이즈는 많아봐야 10-20석 규모였다. 카운터석에 7-10석이 기본이고, 거기에 2-4개의 테이블석이 더 있는 정도다. 현실적으로 한 음식점에서 받을 수 있는 손님은 많아봐야 3-6팀이다. 내가 간 한 일본식 카레 집에는 8개의 좌석이 전부라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1시간을 기다려 식사를 했다. 맛집이라도 한국처럼 좌석이 많은 음식적은 대기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음식점 예약은 필수다. 일본어를 할 수 있다면 당일이라도 전화 예약을 하는 게 좋다.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으면 구글맵을 이용하면 된다. 구글에서 검색되는 음식점의 절반 정도는 온라인 예약시스템과 연계되어 있어서 편하게 예약이 가능하다. 별도의 비용도 들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사흘차에 깨닫고는 항상 다음 날 식사 계획을 미리 세우곤 했다. 예약에 실패하면 그 날은 바로 세븐일레븐(편의점) 행이다.
출국 전, 많은 유튜브 맛집을 알아봤다. 특히 후쿠오카는 먹방 크리에이터들의 성지이기도 해서 정말 많은 맛집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며칠 간 후쿠오카의 맛집에 들러 본 나의 결론은 '유튜브 맛집은 일단 거른다'이다. 유튜브를 통해서는 음식점의 분위기나 메뉴의 가격을 파악하기가 쉽다. 하지만 맛집의 핵심인 '맛'은 정작 크리에이터의 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왕 가서 촬영까지 한 곳에니 좋은 곳이라고 추천하고 싶은 크리에이터들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내 경험에서는 '뭐 특별히 맛있지도 않는데' 라는 생각이 컸다. 맛있어서 방문자가 많은 게 아니라, 알려진 음식점 중에서 맛이 나쁘지 않은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유튜브에 자주 소개된 곳은 사람이 많아서 서비스도 좋지 않았고,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여행의 기분이 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3일차부터는 직접 구글에서 검색을 하고 리뷰를 해서 음식점을 선정했다. 우리가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유투브에 소개된 곳 보다 맛이 떨어지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적어도 일본인들이 한국인 보다 많았다.
밤거리 포장마차로 알려진 '나카스' 거리는 한국어와 한국인 투성이다. 수요가 높아서 가격도 높고 진짜 일본같은 느낌도 없어서 추천하지 않는다. 차라리 텐진 역 근처에 즐비한 진짜 포장마차를 추천한다.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패스.
하지만 한적한 거리에서 자전거로 10분 정도의 라이딩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공유자전거 '차리 (Chari)'를 추천한다. 사전에 앱을 다운로드 받고 카드를 등록해 놓으면 쉽게 이용할 수 있고, 후쿠오카 같은 큰 도시라면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정류장이 있다. 비용도 저렴해서 1분에 50-60원 수준이다. 보통 한번 타면 10-15분을 사용하니까 단 돈 천원이 안 된다. (참고로, 일본 지하철/버스 1회 비용은 2,000~2600원 정도다)
우리는 나흘 동안 필요할 때마다 이 공유자전거를 사용했는데, 최종 비용이 13,000원 정도 나왔다. 덕분에 후쿠오카의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었고, 2km 둘레의 오호리 공원에서는 공유자전거로 함께 간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공유자전거를 이용하기 좋은 또 한가지 좋은 이유는, 자전거 운행에 대한 일본인들의 허용적인 문화다. 도로 한쪽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서 편한데, 필요한 경우 인도를 이용해도 사람들이 잘 비켜준다. 파리나 로테르담에서 이랬다가는 몇 초마다 한번씩 욕을 먹을 수 있는데, 후쿠오카에서는 다들 그러려니 한다.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으로서는 공유자전거를 부담없이 탈 수 있는 환경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서울이나 부산보다 후쿠오카가 더 안전한 느낌이었다. 단순히 소매치기가 없다는 수준을 넘어서, 규칙을 어기지 않으려는 성향과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한 도시 같았다. "일본에서는 분실물을 2시간 안에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후쿠오카에 가 보니 가능하다 싶었다. 실제로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하카타 항구에서 지갑을 분실해서 그날 숙소 근처 경찰서에 신고를 했는데, 마지막 날 호텔을 통해 지갑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우리가 출국한 이후라 바로 받진 못했지만 내용물 그대로 경찰서로 돌아왔다)
여담이지만, 후쿠오카의 경찰들은 친절하고 인내심도 대단했다. 약 40분 동안 구글 번역기를 통해 소통을 하는 동안, 단 한번도 신고를 귀찮아한다거나 대충 처리한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당시 카운터에 있던 경찰 전원이 우리를 도와주려고 해서, 스마트워크 디렉터인 나로서는 '모든 경찰이 내 일에 집중하는 건 좀 비효율적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덧붙여 이 날은 일본인들의 '룰(규칙)'에 대한 집착을 엿볼 수도 있었는데, 분실물 신고가 끝난 후 "수리신고 번호가 적힌 작은 쪽지 대신, 상세한 수리내역을 적은 신고서를 공유해 달라"고 했더니 "그건 룰이 아니다"라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신고내역이 있어야 보험처리가 가능하니 사진을 찍게 해 주거나, 간단한 확인서라도 수기로 써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변도 "그건 룰이 아니다"였다. 어떤 합리적인 방법을 제안해도 사전에 정한 '룰'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빠르게 수긍하고 신고를 마쳤는데, 혁신이나 변화를 업으로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일본에서 다소 답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0가지 팁 중에 다섯 가지를 정리했다. 간단하게 남기려고 했는데, 글을 쓰다보니 핵심만 적었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서 남은 다섯 가지는 다음 포스팅으로 넘긴다. 그 때는 심카드, 택시앱, 번역기, 여행자 보험 등 보다 일반적인 여행자에게 도움되는 내용을 적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