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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Sep 03. 2022

야구장으로의 초대


오늘 일기의 브금


올해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맘만 먹으면 직관을 갈 수 있으며 매일 같이 하는 스포츠를 안 보는 게 갑자기 큰 손해처럼 느껴져서다. 어느 금요일 퇴근하고 야구장에 한 번 가보고는 새삼 사무실과 잠실이 가깝다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툭하면 퇴근하고 야구장에 갔다.


번아웃이 왔을 때 회사 동료에게 마음을 털어놓자 그가 물었다. 요즘 일 외에 낙이 뭐예요?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야구장에 가는 거라고 했다. 동료는 낙이 없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내가 야구장에 적잖은 위로를 받고 있다는 걸 알았다.


천장이 뻥 뚫린 구장에 홀로 앉아 멍하니 그라운드를 보다보면 여러 생각이 들었다. 경기가 재미있든 없든 9회까지 자리를 지켰고 머리와 마음속을 오가는 생각들을 떨쳐내려거나 잡아두려거나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흐르는대로 두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경기가 끝날 때 쯤이면 막막하게만 보이던 것들이 조금 명확해졌고 나는 야구장을 나설 때마다 작은 결정을 하나씩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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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은 결정들을 모아 큰 결단을 내렸다. 회사를 떠나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후회 시나리오를 짰었다. 나는 어떤 상황에 후회할 것인가. 내가 맡아온 프로덕이 성공했을 때? 나는 진심어린 박수를 보낼 것 같다. 정말이지 맘 속 깊이 기쁠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동료들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새로운 일터의 동료들과 잘 맞지 않는다면? 나는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다.


시간만 나면 집이 아닌 야구장으로 향하는 취미를 공개하면서 같은 팀 동료들이 다같이 한 번 가자고 했다. 10명이 퇴근 후 잠실로 향했다. 나는 모든 동료가 이 시간을 즐기길 바랐다. 야구장을 처음 오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인솔(?)이 쉽지는 않았다. 긴장하면 열이 나는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 명 한명을 안내했다. 혹시나 먹을게 모자랄까 맥주가 부족할까 계속 체크하면서.


다 좋았는데 경기가 너무 재미없었다. 롯데와 두산의 경기였고 우리는 두산 응원석 쪽에 앉았다. 올해 두산이 부진하다더니 사실이었다. 초반부터 1대0으로 뒤진 상황에서 두산은 매 타석 탄식을 자아냈고 9회 말까지 2루에 주자가 있는 모습을 못 봤다. 8회 응원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응원은 좀 민망했다.


그런데 마지막 9회 말 1아웃 정수빈이 안타를 쳤다. 이어진 김재환의 1루타, 그리고 투아웃 상황에서 양석환의 역전 끝내기 안타.


우리는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 순간 나도 거의 막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다. 올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워낙 선비 이미지가 강해(실제로 선비라) 티는 못냈지만, 즐거워 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나는 너무너무너무 기뻤다. 블로그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잘 못 찍었지만 애정이 가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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