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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Aug 25. 2022

버나웃-1

점심을 먹고 들어가던 중에 동료가 말했다. 날 좋은데 산책 어때요? 나는 일이 있어서 바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테헤란로를 따라 걸어갔다. 그의 말대로 날씨는 좋았다. 선명한 햇살이 유리로 뒤덮인 건물을 비춰 아름다운 반사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혼자 방향을 틀어 사무실로 향했다.


일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냥 너무 피곤했다. 얼마 전 쉬는 시간에 사람들이 퇴근 후의 취미에 대해 대화할 때 나는 낄 수 없었다. 일과를 끝내고 에너지가 드는 또다른 일-운동이든 모임이든 영화 감상이든 뭐든-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회사 일 자체도 겨우겨우 해내고 있었으니까. 내 일상엔 일과 잠 외에는 없었다. 그 사실이 마음이 무너질 정도로 슬프면서도 무력하게 누워있는 거 외엔 할 수 없었다. 가끔 힘을 내어 사람들을 만나도 나는 금세 지쳐 상대를 무안하게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냈던 것 같다.


야속하게도 원인조차 가늠하기 어려웠으며 그 상태를 벗어나려면 체감상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듯 했다. 나는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버둥대기 시작했다. 마치 눈을 가리고 바닥을 더듬거려 동전을 찾는 것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보면 나는 이럴 때 누구보다 깊은 늪에 빠져버리는 사람이었는데...


이를 악물고 고민없이 흘러가던 내 일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리고 새로운 옆길을 마구잡이로 파내기 시작했다. 내게 도움되는 한 마디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시간과 체력을 내서 만났다.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나를 증명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그 길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지나갔고



깔끔하게 말라있고 산뜻하게 정돈된 새로운 길의 출발선에


나는 서 있다.



오늘은 일을 끝내고 탄 지하철에서 내려야할 역을 지나쳤다. 종합운동장 역에 내려 야구를 보러 갔다.


금요일도 아닌 수요일에 일을 마치고 야구장 외야에 앉아 초가을 날씨를 만끽하고 있다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지나가고 있는 걸까. 원인과 실체는 뭐였을까. 생각날 때마다 써보려고 한다. 나를 괴롭혔던 번아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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