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2학년이 끝날 무렵까지 말을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서로 완전히 다른 타입이었기 때문에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J는 사람들 앞에서 춤추기를 좋아했고 나는 남 앞에 서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J는 공부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었고 나는 공부를 안 했다간 큰일이 난다고 생각했다.
고3을 앞둔 가을,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내게 J가 다가왔다.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J가 책을 내밀었다. 국어 교과서였다. 자기가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봐달라고 했다. 받아 든 책에는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어찌나 동그라미와 밑줄이 많은지 원래 글자가 안 보일 정도였다. 나도 성적이 막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공부해서는 매일 밤을 새워도 시험 범위를 다 볼 수 없을 거라고 조언했다. J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로 J와 나는 같이 점심을 먹었다. J와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하루아침에 변한 그에게 ‘이제 와서 한다고 될 것 같냐'고 말했다. J는 연극영화과를 갈 거라고 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나도 그 말에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J가 목표한 학교는 정말 좋은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19살의 J만큼 간절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는 정말이지 미친 듯이 공부하고 실기를 준비했다. 툭하면 내 앞에서 연기를 선보이며 어떠냐고 묻기도 했다. “웃겨서 못 보겠어." 우리는 밤늦게까지 같이 공부하고 놀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수험생의 해를 보냈다.
수능이 끝나고 갈 대학도 정해져서 집에 하릴없이 누워있던 저녁, J에게서 전화가 왔다. “두부…. 합겨어어억…!!!!” 나는 진심으로 그를 축하했다. 그 연락을 받았을 때가 지금까지도 내 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일 만큼. J의 합격은 기적 혹은 신화라고 불릴 만했고 그 소식은 학교 정문에 현수막으로 걸렸다. 그리고 J의 간절함의 배경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있었다는 건 시간이 더 지나고서야 알았다.
대학에 진학한 후로는 J를 자주 보기 어려웠다. 연극영화과의 삶은 그런 거였다. 그는 방학에도 연극을 준비하고 매일 같이 공연을 하며 바쁘게 살았다. 초반에는 신기해서 J가 공연마다 보러 갔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마저 시들해졌다. 우리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졸업을 코앞에 뒀을 즈음, J에게서 전화가 왔다. “두부, 너 나랑 사업 한번 안 해볼래?”
우리는 강남역 카페에서 만났다. J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생각을 마구 늘어놓았다. 나는 다소 긴장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친한 친구가 사업을 하자니 재미있을 것 같고 또 경험도 될 것 같은 기분으로 나왔는데 J는 그게 아니었다. 눈에 독기가 있었다. 스티브 잡스와 손정의를 말하며 자신도 그렇게 될 거라 했다. 어떤 준비도 안 되어있는 나는 모든 걸 걸고 해내려는 J의 기세가 부담스러웠다. 울먹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별다른 소득 없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J가 말했다. “난 두부가… 가난하지 않아서 아쉬워"
내가 가난하지 않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아빠의 사업은 꽤 잘 됐고 그 덕에 나는 유복하게 자란 편에 속했다. 가난하지 않아서 ‘아쉽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나는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여렸다. 무슨 일이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징징거리는 타입에 가까웠다. J처럼 큰 꿈이 있지도 않았다. 절박함으로 인해 강해진 J가 절박함이 없어 약한 내게 남긴 그 말은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계속 걸었다. J는 배우로서 여러 작품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고 나는 스타트업의 마케터가 됐다. 어쩌다 발을 담그게 된 스타트업 씬은 힘든 세계였다. 열심히는 기본이고 잘해야 했다. 스스로를 계속해서 증명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보기 시작했다. 제일 큰 건 말 더듬이었다. 특히 회사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말할 때 버벅대고 자꾸 멈추니 논리적이기도 힘들었다. 사회 경험도 없던 나는 심하게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난하진 않았지만 결핍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절로 절박함 비슷한 감정이 생겼다. 아마 J는 19살 때부터 가졌던 마음과 비슷한 무엇을 말이다.
이따금씩 J를 만날 때마다 하는 얘기는 다른 애들을 만날 때와의 대화와는 달랐다. 훨씬 솔직했고 진지했고 벅찼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사회에 가치를 주는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하는 그런 대화였다. 또래 애들은 대부분 그런 이야기를 오그라든다고 생각하거나 우습게 봤는데 J는 누구보다 힘 있게 그런 얘기를 잘도 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했던 나는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대화에 발을 맞출 수 있게 됐다.
J와 올림픽 공원을 2시간 내내 걸은 적 있다. J와 처음 친구가 됐던 날처럼 가을이었다. 우리는 걸으며 계속 대화를 나눴다. 서로 각자의 분야에서 진정성 있게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할 말이 많았다. 삶에 대한 진중한 자세를 취한 채 나누는 대화는 마음을 충만하게 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다. J가 내게 ‘니가 가난하지 않아서 아쉬워'라고 했을 때, 그 말에는 자신이 가난하다는 얘기가 내포돼있지 않은가. 친한 사이였다 해도 그런 결핍을 어떻게 내보일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도 말 더듬을 얘기하면서 그 결핍을 메꾸기 위한 노력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 노력들을 말하지 않고는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력들이 자랑스럽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결핍을 말하는 부끄러움따윈 그냥 덮어버릴 만큼.
요즘은 둘 다 정말 바빠서 얼굴을 거의 못 본다. J는 촬영 때문에 내 결혼식도 못 왔다. 그래도 알고 있다. 서로를 정말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와줄 거라는 거. 그리고 어디서도 얻기 힘든 훌륭하고 솔직한 조언과 위로를 해줄거라는 거.
2주간의 두부를 뉴스레터로 만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