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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Aug 31. 2024

나서는 마음

사람이 꽉 찬 출근길 지하철, 맞은편 좌석에 한 남자가 있었다. 고개가 심하게 꺾여있었다. 처음엔 피곤한가보다 했는데 점점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까지 꺾여갔다. 열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조는 거라곤 보기 어려울 만큼 온 몸이 기형적으로 땅을 향해 처졌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뻗기 시작했다. 머릿 속에 오늘 밤 뉴스 헤드라인이 그려졌다.


“아침 출근길 2호선에서 20대 청년 돌연사…”

“열차에 승객이 가득했지만 아무도 돕지 않아…”

“이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세상, 이대로 괜찮은가…”


주위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나설 기미가 안 보였다. 갑자기 각박한 세상을 만든 장본인이 된 것 같았다. 짧은 시간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결국 일어서서 그 남자 앞으로 갔다. “괜찮으세요?” 열차 안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그 남자에게로 쏠렸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의 팔을 툭툭 치며 한 번 더 물었다. “괜찮으세요?” 몸에 손을 대면 바로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동도 없었다. 조금 더 세게 남자의 몸을 흔들었다. 축 처진 연체동물처럼 고개를 떨군 채 그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확신했다. ‘아, 이 사람 지금 정신을 잃었구나' 짧은 찰나 더 빨리 나서지 않은 걸 후회했다. 더이상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저기요, 정신좀 차려보세요!!!” 그의 몸을 세차게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이 놀란 듯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2초 정도가 지난 뒤, 지독한 술 냄새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남자는 “으응..?”하며 고개를 들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 칸으로 넘어갔다. 밤새 술먹고 날이 밝아서야 귀가하던 사람을 내가 오해한 것이다. 모두가 쳐다볼 만큼 큰 소리로 유난을 떨었기 때문에 많이 민망했다. 별 일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과 괜히 나섰다는 마음이 섞여 미묘했다.


친한 친구들이 있는 방에 카톡을 보냈다. “ㅋㅋㅋ 아 쪽팔려” 내 생애 수없이 있었던 시트콤같은 순간을 한 번 더 맞이했음을 지인들에게 알렸다. 지원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지원은 나를 칭찬했다. “잘했어ㅠㅠㅠ"

며칠이 지나 그 일을 떠올렸는데 나 답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들의 시선을 받는 걸 민망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서는 것도 두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무슨 마음이 들어서 나섰을까.


돌아보면 그런 순간은 또 있었다. 회사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밖이 웅성거려 내다보니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뭔가를 찍고 있었다. 알고보니 싸움이 난 거였다. 말이 싸움이지 어떤 사람이 식당 종업원을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있었다. 술에 취했는지 다른 직원들이 말려도 멈추지 않았다. 상대방의 얼굴에 계속 주먹이 날라갔고 종업원은 속수무책으로 맞았다. 그 장면도 충격이었지만 더 놀라웠던 건 멀뚱히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누군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으면 계속 맞을 것 같은데, 아무도 나설 생각을 안 했다. 그 광경은 아직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때도 나는 나섰다. 테이블과 의자 사이를 가로질러 나가 난동을 부리던 사람을 떼냈다. 그리고 경찰이 올 때까지 붙잡고 있었다. 수많은 휴대폰 카메라가 나를 향하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원래 수줍음이 많아 늘 뒤로 빼는 사람이지만,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볼 때면 낯선 사람의 휴대폰 카메라도 상관 없을 만큼의 용기가 생기는 듯 했다. 아니 용기라기보단 내가 나를 못 이겨 등 떠밀리듯 나서게 되는 것 같았다. 내게 어떤 정의감이 있는 걸까? 그건 아닐 거다. 그런 숭고함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신념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없으니까. 또 내가 그 순간순간에 느꼈던 감정은 정의감이 아니었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어쩌면 나는 각박한 세상이 두려운 걸지도 모른다. 입장을 바꿔 내가 곤경에 처했다고 상상해보면 그렇다. 아무도 나를 위해 나서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그러니 누군가 곤경에 빠진 상황은 내게 도저히 나서지 않고선 배길 수 없는 순간인 것이다.


지하철과 식당에서 내가 나선 건 자랑스러워 할만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었다니 아이러니했다. 나설 용기는 두려움이 적은 사람에게 있다는 게 상식이니까.


언젠가 누군가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물은 적 있다. 나는 이렇다할 답을 하지 못했다. “좋은 글…”이라고 말 끝을 흐렸을 뿐이다. 글을 쓰는 게 좋았지만 어떤 느낌을 남기고 싶은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글이 쌓여 내가 쓴 것에 대한 반응을 마주하면서 점점 선명해진 느낌은 따뜻함이었다. 나는 내 글을 읽고 따뜻함을 느꼈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행복했다. 글로써 따뜻함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서는 마음이 글 쓰는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글을 쓴다. 내가 가진 생각을 어디에도 내놓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어떤 한마디도 남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전혀 기여를 못할 것 같은 두려움. 그래서 나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여기저기 눈치를 보면서 오늘도 글을 쓴다. 마치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듯,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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