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미니 냉장고
한껏 다정해지고 싶은 날들이야.
그건 그만큼 다른 사람의 다정함이 필요한 날들이라는 뜻이기도 해.
이사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벌써 아홉 번째 이사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젠 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말이지. 하지만 이번에는 방에서 방으로 하는 이사가 아니라, 방에서 집으로 하는 이사라서 더 그렇겠지? 원래 이사라는 게 내가 원해서라기보다는, 상황이 그렇게 되어서 쫓기듯이 하게 되는 거 같기도 하고.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내 이름이 우편함에 적힌 아주 작은 집을 얻게(여전히 산 집은 아니지만) 되었다고 기뻐할 틈도 없이, 이 작은 집은 어찌나 고요하게 엉망진창이던지. 혼자 모든 책임과 부담을 떠 앉게 되는 일이 퍽 반갑지만은 않더라고. 갑자기 내 이름으로 계약된 빈 집이 좀 막막했어. 네덜란드는 unfurnished집이라고 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빈 집을 주거든. 화장실하고 부엌만 달려 있지, 벽에 페인트 칠도 해야 하고, 바닥 라미네이트도 깔아야 하고, 천장에 등도 직접 달아야 해. 커다란 창에 커튼레일과 사이즈에 맞는 커튼을 고르고 사서 다는 일도, 고르고 골라 중고 냉장고와 스토브, 세탁기를 사는 일도, 인터넷을 신청하고 수도와 가스, 전기세 회사를 골라 신청하는 일 까지, 전부 혼자 해내야 해. 이 나라에 꽤 익숙해졌다고 자부하는데도 모르는 일 투성이었어. 왜, 머리가 모자랄 땐 손 발이 고생이라잖아. 처음 하는 일에 삽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셀 수도 없어.
주변의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좀 해 봤는데, 대게는 이런 반응이었어. 드디어 혼자 살게 되었다니 축하해,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그래도 안정되면 다 괜찮아질걸? 사실 너무 맞는 말인데, 솔직하게 말하면 영어로 된 그런 맞는 말보다는 좀 더 우쭈쭈한 마음을 받고 싶었거든. 어이구, 힘들겠네, 어떡해. 하는 한국말들 있잖아.
이사를 한다는 말에 그런 반응을 할 사람은 세상에 엄마 하나뿐이더라고. 몰랐던 사실도 아닌데 마냥 새삼스러워. 원래 이사는 힘든 게 당연하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라고 말하는 철든 어른들의 세상에 살고 있는 내게,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이든 엄마 하나만 여전히 어린 딸을 대하듯이 걱정을 해. 어떨 땐 귀찮기까지 한 그 걱정이 이런 날엔 이상하게 짠하고 울컥하더라. 나이를 자꾸만 먹어도 나는 이렇게 엄마에게 종종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될까? 뿌에엥- 하는 표정과 애정을 갈구하는 얼굴을 하고선.
아이구, 힘들어서 어쩌나, 그걸 혼자 언제 다할까, 아프지 마래이. 너무 완벽하려고도 말고.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다 커버린지 한참인 자식을 뭘 걱정하느냐 큰 소리를 치고, 엄마는 그래, 어련히 알아서 잘할 건데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금세 수그러들지만. 우리는 또 귀신같은 감들이 있지. 엄마가 아프지 말고- 하는 말을 남긴 다음 날 뒤돌아 서자 마자 아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야. 장염인지 위염인지 모를 복통에 구르느라 차가운 빈 집이 꽤 서러웠단 말도.
나는 엄마가 이사한다고 보내주는 마음을 덥석 받아. 몇 주 동안 뭘 사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끙끙 매던 차에, 그걸로 마땅찮은 누우런 중고 냉장고 대신 작지만 새하얀 새 냉장고를 사버렸어. 냉장고가 이렇게 비싼 거였구나 처음 알고, 냉장고의 에너지 레벨과 소음의 단계에 대해서 공부해가며. 비록 한 번 반품 처리되었던 할인 제품이지만, 83cm 높이의 작은 냉장고는 이제 이 집에서 가장 비싼 가전이 되었어. 냉장고를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날 것 같아. 엄마가 나 먹고살라고 이런 걸 보내줬지, 하고. 우연일지라도 역시 우리 엄마는 자식 먹는 거 챙기는 데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진심이구나 싶어지게.
요즘 미셸 자우너라는 작가의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을 읽고 있거든. 작가가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2세인데, 그 책을 읽으면서 한국인이라면 당연하게 여길 수많은 순간들이 사회적 맥락 없다면 외국인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생각해보게 돼. 사회적 맥락 바깥에서도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부르고 느낄 수 있었을까. 계속 글을 적으면서 알게 됐어. 엄마의 사랑과 애정은 온통 음식이었더라고, 다른 한국 엄마들과 다르지 않게. 나는 어쩐지 나만 특별히 엄마로부터 치열하게 좋은 것들을 먹여서 길러진게 아닐까 생각하게 돼. 전쟁 직후의 엄마들이 '내 새끼 배만 곪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처럼.
냉장고와 스토브 없이 살았던 지난 3주와 그 전의 이사 준비 기간까지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그동안 코로나 시대라고 집에만 머물면서 꽤 튼실하게 바지가 끼일 만큼 쪘던 살들이 조용히 빠져버렸지 뭐야. 먹고사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냉장고와 스토브 없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사람들이 알까. 너무 기본적인 건 사실 공기 같아서 없어지기 전까지는 실체를 확인하게 될 일이 없는 가봐. 속이 아파서 죽이랑 누룽지 같은 것들을 먹고 싶었는데, 가전이 없으니까 먹을 수 있는 게 정말 하나도 없더라고. 그 와중에 밥은? 하고 묻는 사람도 역시 엄마뿐이야. 그 익숙한 걱정이 잔소리라기보다는 따뜻한 애정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 내가 한국 엄마에게 한국 자식으로 길러져서 그런가 봐. 미셸보다야 코리안 엄마의 마인드에 익숙하지.
갖고 싶어지는 다정함이 늘어날수록 나도 다정해지고 싶어. 강아지나 고양이의 다정함처럼, 조건 없이 작게, 할 수 있는 만큼의 다정을 내보이는 사람. 온기를 타인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게 내가 너무 필요한 거라서 그걸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 선뜻 내걸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그렇게 쉽지 않더라고.
지난 봄, 한국에 갔을 때 엄마가 준 말린 새우가루, 작은 멸치들, 고춧가루들. 냉동실에 있다 실온에 나와서 삼 주나 지났는데 혹시 상했을까. 그럼 너무 아까울 것 같은데. 만약 상하지 않아서 다시 냉장고에 들어갈 수 있다면 두고두고 잘 먹을게. 그렇게 잘 살아남아 볼게, 엄마가 보내준 냉장고와 함께.
어떤 시인이 그랬지,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고. 나는 엄마의 말들을 지어다 며칠이나 먹었다우. 밥은? 그 한마디가 어떤 허기를 채우기도 하거든. 어쩌면 그러고 나서야 겨우 복통이 나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