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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May 12. 2022

삶이 통째로 유품이 된다면,

그런 마음으로 한국에 다녀왔다.






긴 코로나 이후 처음이다. 한국에 가기로 했다. 비행기 티켓을 끊으며 했던 생각은,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누구든 여기에 와서 내 삶을 수습할 수 있도록 증거나 힌트 같은 걸 남겨줘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거였다. 부모님은 어차피 영어를 할 줄 모르니까, 결국 그 일은 동생의 몫이 되겠지.


갑작스러웠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약 일주일간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향하는 비행기들이 연이어 캔슬되었다.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여태껏 시기를 조율해가며 언제쯤 한국에 가는 것이 최선일지 가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결정에 최선이라는 건 없다) 그러다 도대체 비행 루트가 어떻게 되길래 문제가 되나 찾아보게 되고, 결국 러시아를 지나던 항공기들이 격추되었다는 예전의 사건사고 위키 문서를 찾아내고 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한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전쟁 상황에서 러시아 영공을 지나가다간 정말로 죽을 수 있겠구나. 대한항공이 그랬고, 말레이시아 항공과 KLM도 그랬으니까. (주로 냉전 시대의 일이다.)


뭐야, 비행기 한 번 타는 데 목숨씩이나 걸어야 해? 하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고 나서야,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이번이 아니면, 정말로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될까 봐.






통장에 돈이 얼마나 남았고(얼마 없다), 구독(subscription)은 어떻게 해지해야 할지, 각종 서비스 사이트 리스트와 시청, 이민국, 세금 관리국, 그리고 교통카드와 미술관 카드 같은 것들을 따져 본다. 보험도 해지해야지. 집세와 계약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려줘야겠지. 스튜디오는 이달 말에 어차피 계약이 끝나니까 됐고, 그래도 보증금은 돌려받아야 하는데. 중고로 사 모은 물건들이 떠오르고. 그 와중에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침대는 중고라도 제 값을 주고 팔면 좋을 텐데, 생각한다. 단출한 주방 살림살이들(하지만 내가 아끼던)과 또, 식물들. 내 방에 있는 몬스테라와 스킨답서스를 포함해, 거실에 있는 아이들까지. 게 중에 별 볼 일 없는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선인장들은 원래 이 집에 있던 애들이고, 조금 더 크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테라코타 팟에 담긴 애들은 모두 내가 사서 애지중지 키운 애들인데. 그건 친구들에게 나눠주면 좋을 텐데. 그런데 내 친구가 누구인지 내 동생이 알게 뭐람. 게다가 이런 결말은 내가 죽은 다음이라는 건데, 유품 챙기러 온 사람이 그럴 정신이 어디 있겠어.



아직도 반쯤은 여행자 같은 마음으로 산다. 여차하면 발을 빼야지. 그건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있는데, 수틀리면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들고 다시 떠날 거야 하는 식의 마음은 나를 떠돌이 신세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단점이 더 큰 거겠지. 장기적인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삶이 되니까.


사실 정착은 3개월이면 충분하다. 집을 구하고,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마트와 빵 가게, 야채 가게, 생활 용품과 장이 언제 서는지, 그리고 번화가가 어디인지, 은행이 어디인지 알아두는 것. 하지만 1년이 2년이 되고, 장기 거주자가 되어가는 영역은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한 것 같다.  



내 방에 뭐가 있더라. 침대와 책상, 작은 선반 하나와 거울. 종이로 된 별 조명과 액자 두 개, 그리고 모아둔 패브릭과 언젠가 쓸지도 몰라 모아둔 잡동사니들, 못이랑 드라이버 같은 공구들. 누군가 내가 죽은 후에 이것들을 와서 들여다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삶이 통째로 유품으로 남겨진다는 생각이 들면, 멈칫하게 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나중에 쓰려고, 라는 말을 붙인 모든 것들이 아직까지 영영 쓸 일이 없어 그대로 방구석에 놓여 있었는데, 이것들부터 좀 비우는 게 좋을까. 그러니까, 만약을 위해, 사후에 내 지난 삶이 더 궁상맞아 보이지 않도록?



그리고 몰래 쓰던 블로그도. 비번과 사이트까지 어딘가에 친절하게 적어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동생이 내 흔적을 찾는 데 고생하지 않게? 지난 십 년간 쏟아낸 생각들을 동생이 보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는 여전히 그가 아는 나일까? 그러고 보면 모든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사후 세상을 미리 생각해두고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을 텐데. 그럼 그 사람의 온라인 영역은 영영 누구도 알지 못한 채로 사라지거나 남겨지게 되는 걸까. 이를테면 블로그 속 비공개된 일기는 본인이 죽고 나면 영영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게 어쩌면 그 사람의 본질일지도 모르는데. 그 사람의 가족은, 과연 그 사람의 현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함께 살지 않는 가족은 여전히 가족이지만, 더 이상 식구가 아니게 된다. 식구라는 건 함께 공간을 공유하고 밥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에게 붙여주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에는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되는 생활 속 무수한 조각들이 있기 마련이다. 자연스러운 대화나 통화 속에서 알게 되는 삶의 패턴이나 일정 같은 것들을 더 이상 공유하지 않게 되면서 상대의 일상을 추측하기가 어려워졌다.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다. 어떤 가족은 더 이상 서로에게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된다. 지난 삼 년여 간 나는 다른 가족들이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 우리는 서로 그저, 잘 지내지? 건강하고? 별일 없지? 같은 무난한 인사말들을 반복해서 나누어왔을 뿐이라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침내 봄의 한국에 다녀왔다.

그리고 네덜란드로 무사히 돌아왔고. 나의 예정된 사후 세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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