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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Mar 01. 2022

노랗고 푸른 응원들에 둘러 쌓여  

#Ukraine 해쉬태그_우크라이나 




- 이런 때에도 어떤 사람들은 지금 러시아에서 관광하고 있대, 그거 좀 (많이) 이상하지 않아?


며칠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을 시작했을 때, 한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응? 우크라이나는 지금 전시상황이라 전 세계에서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되지 않았어? 하자, 응, 우크라이나는 그렇지. 그런데 나는 지금 러시아 얘기를 하는 거야. 와, 러시아에 지금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구나.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그러게, 정말 이상한 일이네, 그건. 어느 나라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데, 그 나라를 침략한 나라는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묘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21세기에 디지털이나 자원을 다루는 전쟁이 아니라, 군사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비현실적으로 와닿았다. 1, 2차 세계 대전처럼, 역사 속에 나오는 과거의 일이 현재 시대에 벌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메타버스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우주로 여행을 떠나는 시대에도, 육로와 해상, 비행로를 통해 군사들이 진격하는 재래식 전쟁이라니. 어쩐지 구식처럼 느껴지는, 그래서 현실감이 없어지는 느낌. 제대로 된 명분과 이유조차 불분명한 전쟁이 한 나라의 독재 지도자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니,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주변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특히 대부분의 인터내셔널들의 스토리와 피드는 온통 우크라이나를 위한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명목 없는 전쟁에 반대하고, 러시아를 규탄하며, 구호품과 기부 링크를 공유하고, 근처의 반 전쟁 시위의 시간과 장소를 공유한다. 온통 노랗고 푸른 물결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지금 어떤 소셜 버블에 속해 있나 생각해본다. 대게 어디에서나 창작 집단은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의 선두에 서 있기 마련이다. BML(Black Lives Matter) 운동 때도 그랬다. 그런데 온라인상에서 그렇게 뭔가가 들불처럼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버블, 그 바깥의 세상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내가 접하는 세계는 아주 작고 좁은 일부의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로 이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대게는 다른 생각을 해 볼 여지가 적다. 그래서 굳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 버블의 바깥세상에 대해서. 피부에 와닿지 않는 뉴스를 보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가늠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겠지. 개인적으로 우크라이나 인을 하나도 모르지만, 전쟁은 슬픈 일이지. 와 내 친구의 가족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탈출하고 있대. 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일 테니까. 정치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과 급진, 중도, 보수파가 있는 것처럼 이 전쟁을 향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할 것이다. 


내가 어떤 버블에 속해있는지는, 그래서 꽤나 중요한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당신의 친구와 동료는 어떤 생각과 의견을 가졌는가. 그들 안에서 '주류'로 취급되는 목소리는 무엇인가. 나는 이제 꽤나 피부톤에 따른 인종 차별이나 젠더 플루이드(혹은 스펙트럼)에 익숙해졌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또한 알고 있다. 그들과 나의 차이는 각자가 속한 소셜 버블이 어떤 성향을 띄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 물론 어떤 주제는 개인적인 관심과 추가적인 공부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애초에 내 주변에 그런 것들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로만 둘러 쌓여 있었다면 아마 나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 공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는 삼십 대였다면 알 수 없었을 어떤 관념들에 대해, 요즘 자주 생각한다. 


대게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속한 버블 속 주류의 생각이 세상의 상식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알고리즘도 이제 당신의 '호'만 추려서 보여주지 않는가. 큐레이션 된 많은 콘텐츠들이 당신의 취향과 의도를 반영해서 선택되었다고 하지만, 그래서 결국 배제되는 수많은 랜덤의 가능성과 의견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신의 인생에서 모든 '불호'를 없애버린 디지털 세상은 어쩌면 잠시는 더 행복하고 평안할지 모르지만, 결국 반쪽짜리, 혹은 진짜 세상의 아주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우크라이나의 시민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나머지 세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러시아의 군사적 침략이 옳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고, 상황을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주지시키는 것 밖에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미 벌어진 전쟁통에 생겨난 난민들을 돕는 일과.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한국에 사는 동안 우크라이나의 위치가 정확하게 어디인지조차 몰랐다. 크림(Crimea) 반도는 사실 하얗고 말랑한 크림(cream)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도. 그 유명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났던 곳이 우크라이나라는 사실도, 근처 키이브(Kyiv)라는 도시가 그 나라의 수도라는 사실도.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뒤늦게 구글을 검색해본다. 이 멀게만 느껴지는 전쟁은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와 주변국, 서유럽과 크게는 전 세계에, 그리고 한국에 결국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어제 유럽이 다른 여러 가지 경제 제재와 함께 러시아 항공기에 영공을 내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로 인해 러시아도 맞대응으로 유럽 항공기들에게 자국 영공을 막았다. 이 말이 무슨 얘기냐면, 대부분의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가는 항공편이 러시아 영공을 지나가기 때문에 유럽에서 한국, 일본, 중국으로 가는 비행이 당분간 막힌다는 이야기다. 올해 봄에도 한국 방문은 요원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대 전염병의 시대를 겪어와서 어느 정도 눈치챘겠지만, 당신의 생각보다 아주 많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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