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부터 탄핵 소추안 통과를 지나, 네덜란드에서
2024년 12월 03일 밤 10시 35분, 한국 (네덜란드 시간 - 오후 3시 35분)
네덜란드의 시간은 오후를 절반 정도 넘어가고 있었다. 겨울이라 벌써 해가 지려고 어둑해지던 무렵이었다. 보고 있던 유튜브 웹사이트를 새로고침 하자 여기저기서 긴급 속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뉴스였다. 아마도 다 똑같은 반응이었겠지.
응? 비상계엄? 갑자기? 내가 모르는 새에 우리나라에 전쟁 났나? 가짜뉴스인가? 하고.
'계엄'이라는 단어는 일상 용어가 아니다. 대게는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처음 들었고, 아마도 가장 최근에는 작년 <서울의 봄> 영화가 개봉했을 때 들어 보았을 것이다. 지난 어두운 현대사의 흔적에 12.12 군사 반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까지 모두를 공분하게 만들어 결국 천만이 넘은 영화가 된, 그 서울의 봄.
가짜뉴스가 아니었다. 이미 온갖 포털에 속보가 도배되고, 유튜브에는 각 방송사의 라이브 뉴스가 추천 영상으로 떴다. 구글 속 외신에도 붉은색의 [Breaking News]가 올라왔다. 사실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계엄령'이라는 건 독재와 쿠데타가 만연했던 시절 이야기 아니었던가? 80년대가 지나고 나서는 결코 일상에서 들을 일이 없던 단어가 아니었나.
대통령의 계엄 선포 영상과 비상계엄 선언서를 확인하고도, 여전히 반쯤은 믿지 못하겠는 마음으로 비상계엄의 정확한 뜻을 찾아보았다. 부끄럽지만 계엄령이라는 말은 단편적인 역사 속 사건으로만 들어보았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계엄령(戒嚴令)은 쿠데타, 내전, 반란, 전쟁, 폭동, 국가적 재난 등 비상사태로 인해 국가의 일상적인 치안 유지와 사법권 유지가 불가하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과 같은 국가 원수 또는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의 동의 아래 군대를 동원하여 치안 및 사법권을 유지하는 조치이다. 계엄을 선포하는 행정명령을 계엄령(戒嚴令, declaration of martial law)이라고 한다. 'martial law'란 '군대식 통치 체계'라는 뜻으로, 군이 경찰권, 검찰권, 사법권 등의 전권을 장악할 뿐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군법을 적용하겠다는 의미이다. 계엄하에서는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되며, 영장 없이 체포가 가능하다.
뜻을 찾아보고 나니, 다시 질문하게 된다.
지금 전시인가? 내가 모르는 사이 북한이나 다른 국가가 전쟁을 일으켰나? - 아니오.
그럼 쿠데타나 내전, 폭동, 국가적 재난 사태인가? - 아니오.
윤석열이 말하는 '반 국가 세력'은 누구인가, 아니, 애초에 그런 세력이 존재하는 가? - 아니오.
행정명령의 선제 조건이 '전시나 그에 준하는 상황'일 때 발령이 가능하다, 인데 대통령은 왜/어떻게 국가에 비상계엄령을 내렸나? - 그걸 이제부터 하나씩 찾아봐야 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의문점 투성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X(구 트위터)는 멘션들로 폭발 직전이었고, 유튜브 뉴스는 저마다 국회와 여의도 상황을 라이브로 송출하며 최대한 정보를 입수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외신은 아무래도 한국 포털보다는 느리게 소식이 올라왔다.
급하게 희미해져 가는 근현대사의 기억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았다. 마지막 계엄령은 1980년 독재가 이어지던 시절에 발령되었다. 지난 45년여간 대한민국은 나름 안정적이다 자부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발돋움하는 중이었는데, 이게 무슨 역사에 똥뿌리는 소리야, 대체.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였던 일이 어느새 최근 역사의 한복판으로 옮겨져 있었다. 난데없이 현대사의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느낌.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모든 것이 실시간 라이브로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다는 점. 보는 눈이 많다는 것, 그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전 세계가 국가 지도자의 탈을 쓴 미친놈이 하는 짓을 라이브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심장이 빠르게 쿵. 쿵. 쿵. 뛰었다. 계속해서 웹사이트의 새로고침을 누르는 손이 조금 떨렸던 것 같기도 하다. 한국과 7000km 떨어진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조금도 놓치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는 일? 지난 2년여간의 현 정부와 국회의 정치 현안을 빠르게 살핀다. 분명 늦은 새벽 시간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속속들이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이고 있었다. 대단한 사람들. 무엇보다 그날 그가 건드린 건, 국가적 트라우마였다. 5.18 민주화 항쟁을 기억하거나 혹은 경험한 사람들이 아직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감히.
2024년 12월 04일 새벽 00시 20분, 한국 (네덜란드 시간 - 오후 5시 20분)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째깍째깍 흘렀다. 한국은 자정을 넘어섰지만 여기는 이제 저녁에 접어들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했다. 보통 10시 전에 주무시는 분들이라 여태 아무 연락도 없는 걸 보면 아마도 잠든 게 틀림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 그렇다면, 이 상황이 한밤의 꿈처럼 그들이 잠든 사이에 끝날 수 있기를 바랐다. 헌법에 의하면 계엄령을 해제시키는 방법은 국회의 재적의원(300명) 과반수 이상이 모여 투표로 계엄의 해제를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방법뿐이라고 했다.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각 방송사의 유튜브 라이브 뉴스를 지켜보았다. 이게 될 까, 가능한 일이려나. 나라의 위기 앞에 나는 무력한 재외국민 1이 되었다. 정치나 법은 잘 모르지만, 되길 바랐다. 그게 아니라면 상황이 너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았거든. 라이브 채팅창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혼란스럽게 떠돌았다. 제발 제발 제발 같은 바람도, 국회에 모인 시민들을 향한 걱정도, 대통령에게 화난 목소리도, 무장한 군인을 욕하는 목소리도 거기 있었다. 일 분 일 초가 이렇게 길었던가.
무장 군인과 경찰이 국회를 봉쇄했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시민들도 거기에 있었다. 길이 막힌 국회의원들이 하나둘씩 담을 넘어 국회로 모여들고, 국회의장이 그 가운데에 서서 침착하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회의장 바깥에서는 특수부대가 국회에 진입하고 헬기가 날아들며 기자와 시민, 군, 경이 얽혀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회의장 안에서 국회의장은 이럴 때일수록 서두르면 안 된다고, 절차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라이브 뉴스로 회의장 안과 밖을 동시에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이었을 것이다.
2024년 12월 04일 새벽 01시 05분, 한국 (네덜란드 시간 - 오후 6시 05분)
마침내 계엄령 발표 150분(오전 1시경)만에 국회의장의 망치 소리가 땅. 땅. 땅. 하고 울렸다. 국회의원 192명의 만장일치로 계엄령은 해제되었습니다. 대통령은 계엄령을 즉시 해제하여야 합니다. 국회는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꼭 지키겠습니다. 하는 국회의장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전달되었다.
와, 이걸 해내다니! 그 자리에 모인 국회의원 192명과 시민들에게 커다란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해냈다. 하지만 기뻐하기엔 여전히 우려가 많았다. 대통령이 즉시 계엄 해제를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상황이 끝난 거라고 믿어도 되는 걸까.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즉시 해제를 발표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는 거기서 무려 세 시간을 더 버티며 해제를 미루었다. 유튜브를 새로고침 할 때마다 많은 추측성 정보들이 떴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이걸 언제부터 준비했나, 계엄을 경고한 국회의원의 인터뷰와 각자의 추측과 과거 그의 행실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이쪽저쪽으로 엮이고 있었다.
그 세 시간 동안 나는 "너네 대통령이 왜 계엄령을 선포했어?" 하는 말에 어떻게 영어로 설명할 수 있을지를 가늠했다. 나는 네덜란드에 살고 있으니까. 당장 내일 아침 주변에서 도대체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계엄령이 영어로 martial law라는 걸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그럼 야당과 여당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윤석열의 만행과 반 국가 세력이라는 음모론을 어떻게 설명하지, 무엇보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외국인들에게 오류 없이 전하지. 그가 건드린 국가적 트라우마인 5.18 민주화 항쟁을, 한국인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단박에 알아차릴 모든 맥락을, 그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국회와 국회의원, 내란, 수괴, 탄핵 같은 중요한 단어들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사전을 찾아본다. (사실 수괴 라는 말도 처음 들어보았다) 외신에선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도 훑어본다. 이 분한 마음을 외국인들에게 앞뒤의 맥락과 함께 이해시키고 싶다.
그날 밤 라이브 영상에서 보았던 군인들 앞에 몸을 던져 막던 시민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어느 영상 코멘트 란에 누군가가 적은 글에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45년 전의 광주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러게, 솔직히 말하자면 여태껏 한 번도 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여태까지는 그게 그저 역사 속의 사건이었거든. 이 순간, 그 사람들은 역사 속 누군가가 아니라 갑자기 과거에서 되살아난 우리의 동지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 시절의 민주화 항쟁에 사그라든 목소리들에게 빚을 졌고, 이번에는 또 국회로 달려 나간 시민들에게 빚을 졌다. 그들 덕분에 민주주의가 살아났다. 거창하지 않게 표현하려 해도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네.
이명박 촛불 시위와 박근혜 탄핵 이후에는 한동안 정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은 극우 대통령에 대한 분한 마음이 있었으나, 다른 나라에서 먹고사는 일이 더 급했다. 막상 이런 일이 뒤통수를 치자 꽤 얼얼하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어도, 나는 대한민국 국적의 시민이구나. 나라의 안위와 민주주의의 사활에 대해 생각했다. 거기 여전히 살고 있는 가족을 생각했다. 언젠가 돌아갈 나의 미래를 생각했다. 민주주의가 무너진 독재 치하의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너무 끔찍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이라도 그렇게 되도록 두고 볼 수는 없었다.
2024년 12월 04일 새벽 04시 40분, 한국 (네덜란드 시간 - 오후 9시 40분)
12월 3일의 밤은 길었다.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첫 계엄령 발령 6시간이 지난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녹화된 윤의 계엄령 해제 발언이 송출되었다. (여러 파일 중 하나가 송출되는 것이 라이브에 박제되었다) 네덜란드 시간 밤 10시를 향해가는 시간. 새벽같이 일어나는 엄마에게 그제야 안부를 물었다. 뉴스를 보았느냐고. 부모님이 잠든 동안 이 모든 일들이 일단락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2024년 12월 07일 한국
계엄령이 해제되고 놀란 사람들이 더 이상 그를 국가 지도자 자리에 놓아둘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국회에 탄핵안을 상정시켰다. 야당 좌석 192석으로는 재적 의원(300명)의 2/3을 넘길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였다. 여당은 그날 단체로 투표를 거부하고 회의장을 떠났고, 결국 195표로 투표가 불성립되었다.
국회에서의 탄핵안 투표를 실시간으로 한참을 바라봤다. 계엄령 선포 이후로는 뭐든 내 눈으로 직접 살펴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투표 불성립으로 본 회의가 끝나고, 나는 그저 한국말로 누군가와 마음을 토로하고 싶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에게 패하고 극우 유튜버에 빠져 반 국가 세력 음모론이 어쩌고 하는 대통령의 한심함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저거 미친 거 아니냐"는 말에 앞뒤의 맥락을 다 이해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공감이 그리웠다. 여기서 가까운 친구들이라 해봤자 그들이 본 건 '브레이킹 뉴스 - 남한 윤석열 대통령 계엄령 6시간 만에 셀프 쿠데타로 끝나' 정도의 타이틀이 전부다. 그 사건의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그들은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걸 부족한 영어로 매번 설명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내 영어 실력의 한계는 겨우 이 정도였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 없는 정도. 여당과 야당을 ruling party와 opposing party라고 부른다는 것을 검색으로 알게 된 정도.
계엄령 이후로 매일같이 국회 앞에서 대통령 탄핵 집회가 열렸다. 그가 군의 통수권자로 남아있는 한 2차 3차의 계엄령, 혹은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현장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다. 그들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응원을 DM으로 보냈다. 못 가봐서 미안해, 고마워, 추운 날 고생 많았어, 하고. 이렇게 추운 날 거기 서 있는 친구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짧은 대화들이 내게도 위안이 되었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거든. 다른 나라에 산다는 건, 생각보다 더 커다란 다른 맥락이다. 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잃거나 놓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굉장히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시리아 독재 정부의 붕괴나 우크라이나 전쟁, 혹은 팔레스타인 전쟁이 훨씬 더 중요하고 가까운 이슈다. 먼 동아시아 한국 대통령의 6시간짜리 미친 짓은 읭? 스럽지만 남의 일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이 나라에 살고 있어도 여전히 한국인이고, 그런 정체성의 내게는 당장 한국의 계엄령이 훨씬 더 중요하고 긴박하며 위태롭게 느껴진다. 그걸 여기서 모국어로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게, 생각보다 외로운 느낌이었다. 영원히 이 나라에서 나는 이방인이겠구나 싶은 순간. 몸은 이 땅에 있어도 정신은 다른 맥락으로 이해되는 외국인 말이다.
자주, 양 쪽의 땅에 발을 딛고 선 채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보는 기분이다. 어느 쪽에서도 발을 뗄 수 없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은 느낌. 양쪽 지형이 다르게 흔들리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온 힘을 다해 쓰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뿐이다. 이러다가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한쪽으로 넘어지거나 양 쪽으로 나누어지는 순간이 오려나.
2024년 12월 07일 네덜란드
우연이라기엔 너무 기묘하게, 마침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스웨덴에서 열리고 있었다. 한국의 굵직한 현대사를 관통하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을 써왔던 작가에게 사람들은 지금의 한국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소년이 온다>의 배경이 되는 1979년의 계엄령을 공부했었는데 2024년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강 작가가 광주 민주화 운동의 기록을 목격했을 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이 질문은 45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다.
첫 번째 탄핵안이 부결되고 나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지 좀 암담했다. 추운 겨울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얼마나 빨리 지나갈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어서. 한국을 떠나고 영어를 사용하면서 웬만해서는 '우리(our)'라는 모호한 말 대신 '나의(my)'라는 말로 대체해 왔다. 하지만 그날 밤만큼은 그냥 '우리'중의 하나가 되고 싶었다. 우리는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고 믿고 있어서.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은 끝을 볼거라고. 폭력의 반대편에 서서.
2024년 12월 15일
<Small things like this> 한국 번역 타이틀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킬리언 머피가 원작 소설에 반해서 주연까지 맡았다는 이 영화가 말하는 사소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영화의 배경은 7,80년대의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가 여러 가지 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시절이다. 당시 수녀원에서 취약한 상황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모아 가두고 강제 노역을 시키며 불법적으로 착취했던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내용. 영화는 주인공 빌 펄롱의 지난한 일상 속에서 어떤 불합리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 그가 했던 결심에 대해 보여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난하고 힘없는 영세시민이 절대 권력 가톨릭의 부당함을 마주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랄까.
거대한 권력과 맞은편에 놓인 소시민의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국가나 종교의 힘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 언제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이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결국 절대 권력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작고 사소한 양심과 결심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작은 힘들이 하나하나 모인다면.
14일, 드디어 꺼지지 않은 수많은 응원봉들과 깃발과 목소리들에 힘입어, 마침내 내란 수괴의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다. 하지만 총 204표, 겨우 4표의 차이의 아슬아슬함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나머지 96표(무표 포함)의 부정한 의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한 마음으로 연결된 시민들의 양심과 믿음,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결심을 하고 이 추운 날 국회로 모여든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떠올린다. 이토록 사소해 보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서 함께 큰 산 하나를 넘었다. 작은 용기는 중요하다. 희망은 힘이 세다고 했다. 이 국가적 위기를 통해, 다시 한번 이 단결력이 센 사람들의 의지를 본다.
지난 10일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전전 긍긍한 마음으로 뉴스를 살피며 한국의 현대사와 최근 정치 추세를 공부하느라 바빴는데, 이제야 겨우 발끝을 펴고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시작일 뿐이지만.
https://youtu.be/PUlQNsl4Qvk?si=HLZEtgElpkJaPw7a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지 않겠다 외치는 목소리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가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되리라
21세기에 19세기 프랑스의 역사 속 민중의 노래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네.
그때나 지금이나 엉망진창인 정치는 결국 화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다음으로 나아간다.
다시 만난 세계도 꺼지지 않는 응원봉도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도 더해진 다양하고 업그레이드된 민중의 목소리로.
아직도 광장에는 분노한 시민들이 모여 평화로운 집회를 통해 윤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귀가 있다면 듣고 있겠지, 당신도. 이 분노한 민중의 목소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