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런치 #6] 대통령의 글쓰기
사람이든 사물이든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 가치를 알아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겉표지를 한 장 넘기면 노오란 속지가 나오는 이 책을 2014년 처음 발행됐을 때 봤더라면, 누군가가 누군가를 향한 노란빛 그리움으로 썼겠다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생각을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드러나지 않은 실세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마음대로 뜯어고쳤던 답답함과 수치의 시간을 지내며 사람들은 '정상'과 '상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 책을 다시 찾고 있다.
저자는 8년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일하며 두 대통령에게 배운 글쓰기 노하우를 정리했다. 보통의 경우, 글쓰기에 대한 글은 자칫 너무 원론적이거나, 반대로 맥락 없는 예문의 나열로 지루하고 산만한 글이 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각각의 연설문이 탄생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그 속에서 보고 들은 대통령의 글쓰기 노하우가 하나의 궤로 잘 녹여져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 보면 글쓰기를 넘어 두 사람이 보인다.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그 글에 전심전력을 다한 두 사람이었다. - P 41
연설문의 스타일에 있어서 김대중 대통령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더 직설적이더라도 의견을 분명히 밝히는 등 차이점들이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글쓰기에 대해 욕심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이 보인다. 그들은 쓰기 위해 읽었고, 고민했고, 토론했다. 메모하고, 연습하고, 새벽까지 글을 수정했다. 그리고 그 이유 역시 같았다. 대통령의 글에는 국민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 담겨 있고, 그것이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두 분 다 연설문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 P 288
국민이 가진 주권으로 대통령을 뽑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리더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국민과 소통하고 설득하며 이끌어야 한다. 불통의 시간, 우리가 답답했던 진짜 이유는 리더의 '침묵'이라는 현상을 넘어 '생각을 알 수 없다'는 근원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몇 안됐던 그 연설문들마저 자격 없는 사람의 글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우리는 자괴했다. 리더의 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다.
책을 다 읽기까지 참 다양한 감정들을 느꼈다. 무슨 소설도 아니고 글쓰기에 대한 글인데 말이다.
글을 좀 잘 써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샀다. 책 읽기를 차일피일 미루다 JTBC 태블릿 PC 보도를 보고 억울하고 분한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는 너무 어려서 잘 알지 못했던 그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정치적 평가를 떠나서 최소한 그들은 생각했고, 글과 연설로 국민에게 그 생각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대통령의 연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도 글을 마무리 짓는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는 무조건적으로 신뢰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담은 글을 쓰고 우리에게 말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 말에 관심을 가지고 듣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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