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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Feb 07. 2023

기억하고 싶은 오늘, 지우고 싶은 오늘

2023.2.6. 육아 경력 795일째



나는 그동안 이서에게 뭐든지 말했다. 기저귀를 갈 때는 '기저귀~ 물티슈~'하며 사물의 이름을 말했고 이서가 어떤 표정을 지을 때 그 감정을 설명해 줬다. 요리할 때는 재료나 도구의 이름을 알려주고 '보글보글, 지글지글' 같은 의성어도 입으로 말하며 요리했다. 어떤 날은 이서가 알아듣지도 못할 것 같아 내가 너무 많이 말하나 고민했는데 이서는 그 말들을 다 귀담아듣고 흡수해서 어느 날 짠! 하고 말하곤 했다.


이서는 두 돌이 지나면서 말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제는 점점 자기 생각과 감정, 느낌을 꽤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 불리할 때는 '근데~'로 시작하는 문장을 말하고 자신이 속상한지, 아쉬운지, 무서운지, 좋은지, 행복한지 등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게 됐다. 그리고 하루종일 말한다. 더 빨리, 많이 말하고 싶어 헉헉 숨이 넘어갈 듯 말을 한다. 어느 정도냐면 하루종일 그 말을 듣다가 내가 '이서야, 엄마 귀가 아파. 조금 쉬자.' 하면 '엄마, 아파? 괜챠나? 후 해줄게'하고 귀에 대고 후후 바람을 분다. 밤잠을 잘 때는 한 시간씩 혼자 속닥속닥 애착 기린 인형에 대고 말을 하느라 잠을 못 잔다. 나는 그동안 이서가 옹알이를 하고 짧은 단어를 하나씩 배울 때마다 이서가 말하게 될 날을 기대했는데 요새는 매일이 즐거우면서 너무 힘들다. 심지어 밤잠을 재울 때는 굴러다니며 계속 말하는 이서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나는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 하루종일 이서의 말을 듣다가 저녁이면 지쳐있는 거다. 오늘도 이서에게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기다려야 잠이 온다고 다독였는데 이서는 잠이 안 온다고 백 번 말하며 캄캄한 침대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어두운데 자꾸 돌아다니는 게 위험하기도 하고 나도 너무 피곤해서 욱하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렇게 종알거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갑자기 잠에 빠져들어 숨소리가 바뀐다. 말하느라 지쳤는지 깊이 잠들어서 숨소리가 바뀌고 3분 만에 내가 방을 나서도 깨지 않는다. 잠든 이서를 두고 살짝 방문을 닫고 나와 베이비캠을 켜고 이서가 자는 모습을 봤다.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대자로 뻗어 자는데 몸은 많이 자랐지만 영락없는 아기 얼굴이다. 잘 때는 꼭 엄마가 함께이길 바라고 엄마 뱃속에 있는 동생을 안아주겠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배를 껴안는 아기. 어느 날은 자기는 많이 컸다고 뭐든 혼자 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몸을 웅크리며 자기는 쪼그만 아가라고 말하는 아기. 엄마와 아빠와 같이 있으니 좋다고 말하는 아기. 아침에 일어나면 턱을 괴고 옆으로 누워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엄마, 잘 잤어? 엄마가 예뻐서 보고 있어'라고 내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아기. 이서는 나에게 예쁘고 고운 말을 많이 하는데도 나는 듣느라 힘들다고 결국 짜증을 내는 거다.


아침이면 나도 다시 충전돼서 이서 얼굴을 매만지며 '잘 잤어? 예쁜 아기'하고 안아주고 손발을 주물러준다. 이서가 엄마의 좋은 모습만 기억하면 좋겠지만 나도 자식이었어서 잘 알듯이 아이는 상처도 오래 간직한다. 이서에게 좋은 엄마이려면 내가 좀 더 건강하고 체력도 길러야 한다. 이제는 아기가 둘이 될 테니 이서에게 더 조숙하길 바라게 되지 않을는지. 그때마다 기억하고 싶다. 이서는 아기다. 여전히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아기다.






2022.3.7. 월

기억하고 싶은 오늘. 이서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무언가 ‘큰 것’에 대해 설명했다. 손을 가슴에 모았다가, 양 옆으로, 위아래로 벌리며 하루 종일 행복한 얼굴로 아무도 못 알아듣는데도 실망하지 않고 말했다. 활짝 웃으며 달려와 신나게 옹알이를 하고 달려가 장난감 랩탑에 뭔가를 타닥타닥 쓰고, 장난감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응응 대답하고는 또다시 춤추듯이 온몸을 쓰며 뭔가를 설명했다. ‘정말? 대단하다. 엄청 크구나’ 하고 호응하면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이고 팔을 더 크게 벌렸다.


이서는 늘 종알종알 자기만의 말을 많이 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얼른 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오늘 저렇게 행복하게 땨띠땨띠 아꿍다꿍 수다 떠는 걸 보고 있자니 말하기 시작하면 이 날이 얼마나 그리울까 잠시 감상에 젖어 이서의 말을 들었다. 귀여워서 바라본 건데 들어줘 고맙다는 건지 말이 끝나면 와서 나를 안아주고 머리를 만져줬다. 아기는 왜 이렇게 행복한지. 너무 소중하다 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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