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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Apr 05. 2023

경력직이 되었다

2023.3.7. 엄마 경력 853일째



둘째가 태어났다!


이번에도 아기는 느긋해서 예정일인 3월 4일이 지나는데도 아무 조짐이 없었다. 우리집 애들은 왜 이렇게 내 뱃속을 좋아하는지.. 머리도 크면서.. 34주 초음파에 이미 2.5kg을 예상한 아기라 40주차가 지나는 시점에 못해도 3.6킬로는 이미 넘었을 것 같았다. 나는 이서 때처럼 또다시 머리를 동여매고 언덕을 올랐다. 아랫배가 뭉근히게 뭉치고 골반이 아팠다. 마음 속으로 몇 바퀴만 더 견딜지 세면서 계속해서 짧은 언덕을 오르고 내렸다. 첫째 이서는 이 언덕을 열 세 번 오르고 그날 밤 양수가 터져 만나게 됐다.


이번에는 언덕을 오른 그날 밤부터 조금씩 가진통이 시작됐다. 아침에 주기가 잡히기 시작했고 출산은 두번째여도 진통부터 온 건 처음이라 내 진통이 어느정도여야 병원에 가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수업을 들으러 갔던 남편은 진통 주기가 6-7분 사이를 오간다고 하니 일단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시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이미 와 계셔서 이서도 할머니와 지내게 될 거였다. 이서와 포옹도 하고 다시 한 번 설명해줬다. 이서는 이미 초음파를 보러 같이 갔다가 나이 제한에 걸려 못 들어간 경험이 있어서 병원에 엄마와 아빠만 간다는 걸 빨리 받아들였다. 남편과 나는 약간 들뜨고 긴장한채로 병원에 갔다. 이서때는 양수가 터지면 금방 애가 나오는 줄 알고 아무 준비없이 밤새 뜬눈으로 기다렸는데 이번엔 우리도 경력자라 패드를 챙겨가 넷플릭스도 보고 여유롭게 낮잠도 자며 아기를 기다렸다.


아무튼 이래저래 고난과 역경을 지나 자궁문이 다 열렸고 임신 후기 내내 탯줄을 목에 감고 있어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하던 조이는 태어날 때까지 탯줄을 감아 심장박동이 느려지기도 하고 여러 위기가 있었다. 그래도 건강히 만났다. 길쭉하고 커다란 아기가 내 밑에 짠 하고 나타났는데 이서때보다 더 눈물이 많이 났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서를 낳았던 때도 생각나고 그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회색빛의 막 태어난 아기가 탯줄로 나와 아직 연결된 채 의사의 손에 들려있는 장면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스탭도 잘 만나서 내가 아기를 안고 울음이 터지자 모두가 일을 멈추고 조용히 기다려줬다. 나도, 남편도 울고 아기는 울다가도 내 심장소리에 울음을 멈추고 쉬었다. 이서처럼.


정이한. Ian. 3.86kg의 꽤나 우량아였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경력직 부모가 되었다.


이서때보다 회음부도 잘 마무리해줬고 여러 후처리가 잘 돼서 도넛방석 없이도 앉을 수 있었다. 몸이 부은 것 말고는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다. 이서도 할머니와 너무 잘 지내고 있었고 태어난 아기도 황달 말고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기는 역시나 때마다 울었지만 우리는 나름 경력자라 울음소리에도 덜 당황하고 문제점을 찾아갔다. 하지만 경력직이어도 아기가 왜 우는지는 매번 찾아야 하는 일이다. 기저귀도 열어보고 젖도 먹이고 그도 아니라면 속이 불편한지 트름도 다시 시켜주고 잠자리가 불편한지 봐줘야 한다. 나는 경력자여도 호르몬 때문에 아기 울음소리에 줄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음날 시엄마와 이서가 병원에 왔다. 이서가 너무너무 반가웠다. 이서는 이한이를 안아보고 작아진 엄마 배도 만져보고 엄마 아빠가 그동안 수없이 설명했듯 진짜로 엄마 배에서 조이가 태어났다는 걸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얼마나 신기하고 믿기 어려운 일일까. 집에 와서는 아직 수유 주기가 안 잡힌터라 시도때도 없이 엄마가 불려가 아기 젖을 먹이는 바람에 이서의 불만이 대단했다. 어느날엔가는 할머니에게 ‘조이는 왜 쭈쭈를 먹고 또 먹는거야’하고 불평을 했단다. 울기도 하고 엄마 가슴을 막아보기도 했지만 자신은 쿠키나 아이스크림처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지만 이한이는 엄마 젖밖에 먹을 수 없다는 걸 측은히 여기기도 했다.


첫째가 있으니 육아는 몇 배로 어려워진다. 아기의 욕구를 읽기 어렵고 모든 게 서투르고 무섭던 첫째때와 달리 둘째는 울음 소리도 금방 파악되고 꽤나 수월하게 굴러가지만 첫째도 놀아주고 식사를 챙겨주고 씻기고 재워야 한다는 미션이 굉장히 크다. 더군다나 엄마는 산후조리로 주로 방에 있으니 매일 엄마와 놀고 먹고 밖에 나가 놀던 이서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너무 괴롭다. 정말로 내가 밖에 못 나간 한 달 동안 이서도 거의 집에만 있었다. 좋아하던 놀이터나 동물원도 엄마와 가고 싶어서 망설이곤 했다. 그래도 이서는 언어가 빠르고 공감 능력이 높은 편이라 할머니와 아빠가 ‘엄마는 몸이 아파 쉬어야 하니 이서가 좀 기다려줘’라는 설명을 이해했다. 그래서 내가 발목 보호대를 하고 1층으로 내려갈 때마다 이서는 나를 반기면서도 ‘엄마 안 아파?’를 수시로 묻고 밥 먹을 때마다 엄마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결국 이서를 위해 삼주차에는 옆집 이모집에 이서와 둘이 가서 놀기도 했다. 엄마와 단둘이 나왔다는 것에 이서는 찐웃음을 내내 지었다. 기온이 올라가 따뜻한 날에는 이서와 둘이 짧은 산책을 하기도 하고 아빠와 셋이 놀이터에 가서 찐하게 놀기도 했다. 작은 이벤트에도 첫째는 행복해진다.


이한이는 그 와중에 급성장기도 겪었다. 아들이라 그런지 우량아라 그런지 먹는 양이 대단해서 결국 분유도 추가로 먹였다. 그제서야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한이는 배가 부르니 행복하고 이서는 엄마가 한시간마다 젖을 먹이러 가지 않으니 오래 놀 수 있고 나는 가족들에게 아기를 맡기고 좀더 잘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우리는 꽤나 많이 지쳐있다. 어른 셋 모두가 긴장 상태로 아이 둘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데도 몸과 정신이 위태롭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죄가 없으며 사랑스럽고 무럭무럭 자란다. 이서의 말은 더더욱 기가 막히게 늘었고 이제는 내가 동생 젖을 먹일때 인형에게 젖병으로 수유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오면 내가 읽어주기도 하며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엄마는 하난데 애는 둘이라 밀고 당기는 날들. 둘 모두에게 더 잘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매일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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