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884일 째
엄마의 삶은 언제나 피곤하다. 잠은 부족하고 원하는 형태의 휴식을 누릴 시간은 터무니 없이 적다. 그래서 몸도 피곤하지만 실은 마음이 피곤한 날이 더 많다. 아기를 키우다보면 매 순간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때가 많다. 어떤 일정에 맞추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갈 시간이 됐는데 이한이가 갑자기 또 배고프다고 신호를 보낸다든지, 별안간 이서가 나가지 않겠다고 도망을 다니거나 이한이를 겨우 재우고 이서 낮잠을 재우려는데 드디어 엄마랑 같이 있게 되니 이서는 최선을 다해 자지 않고 놀겠다고 버티고 그러다 이한이는 다시 깨서 울고.. 하여간 매일이 이런 식이다.
그나마 이한이가 낮밤을 잘 아는 아기라 밤 열시쯤 되면 집이 조용해지는데 그럼 그제서야 오늘 계획했지만 못한 일들이 생각난다. 사소한 것들이다. 모유 수유도 하고 있으니 몸을 좀더 자주 씻으려고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이를 못 닦은 것, 전화해야 할 곳에 못한 것, 물을 더 마셨어야 했는데 못한 거나 내가 먹을 약을 놓친 것. 놓친 건 대부분 나를 위한 것들이다. 이것 뿐이 아니라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두 시간을 못 갈 때도 많다.
가끔은 내 인생이 이게 전부인가 아쉽고 슬퍼질 때도 있다. 첫째인 이서 때는 정말 이런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정말로 힘들었다. 나는 내가 '무언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 무언가는 엄마가 아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엄마로 사는 그 시간이 '나'의 삶이 아닌 것만 같아 수없이 괴로웠다. 하지만 경력직이 되어 다시 신생아를 키우는 지금, 처음과 다른 점은 이런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안다는 거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챙겨야 할 짐도 줄어들고 아이가 스스로 할 줄 아는 것도 늘어나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가벼워지는 때가 온다.
동시에 아이에게 반응하는 것도 달라진다. 이서를 키우는 첫 일 년간 나는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늦게 반응하면 뭔가 잘못될 것처럼 전전긍긍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울음에 늦게 반응하면 울음이 길어질까봐, 혹시라도 모든 표현을 울음으로 하게 될까 봐, 넘쳐나는 육아 정보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안에서 나와 내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나의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요새 육아 기준은 상당히 아이 위주라 부모의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경우가 많다. 이서를 기르며 조금씩 관계의 추를 내쪽으로 가져오려 노력했고 이한이를 키우면서는 반응 속도도,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여유로워졌다.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육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내가 살고 싶은 '무언가'의 삶을 기웃거리기보다 매일의 내 삶을 아끼는 것이다. 내 몸과 공간을 깨끗이 하고 짧게라도 운동하며 체력을 기르는 것, 작은 시간을 내어 묵상하고 공부하면 내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게 기를 수 있다. 나는 더이상 두 아이에게 쩔쩔매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협박하지 말라고 하지만 협박도 한다. 가끔은 건강하지 않은 음식도 함께 먹고 때로는 내 감정이 앞서기도 한다. 하지 말라는 것을 모두 지키려다 보면 내 마음이 찌그러드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아이를 재우고 자책하곤 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대신에 지친 나를 다독일 일을 하고 내일은 좀더 잘 사랑해주기로 마음 먹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 나의 사소한 실수로 아이가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그건 결국 내 아이의 타고난 힘을 믿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육아서에서 하지 말라는 것들을 내 부모도 많이 했지만 나는 그럭저럭 잘 이겨내고 여전히 내 부모를 사랑한다. 아이는 연약하여 보호해야 하지만 받들어 모실 존재는 아닌거다. 또 아이들이 잠든 밤 생각한다. 오늘도 그럭저럭 잘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