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지 Aug 23. 2024

학교 가기 싫어

엄마 경력 1358일째



첫째 이서는 3년 8개월을 꼬박 채워 가정 보육을 하고 있다. 여기 미국에서는 만 4세 이전에는 공교육에 포함되지 않고 데이 케어나 마더스 데이 아웃(Mother's Day Out)으로 부모가 비용을 부담하며 보육 시설에 보낸다. 교회나 사립학교에는 이런 시설이 있는 곳이 있다. 각기 비용도 일정도 시간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비용도 고민했고 작년까지는 이서가 엄마와 떨어지기를 힘들어해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학교에 무리해서 보내지 않기로 했다. 올 초에는 한 곳에서 자리가 났다며 연락이 와서 온 가족이 방문해 보고 등록금도 내고 준비물까지 다 준비했는데 학교 측 착오로 이서 나이에 안 맞는 반을 제안했다는 걸 알고 취소됐다. 한국이었다면 5세 반이었을 이서는 여전히 온종일 엄마와 있다.


이전에는 단순히 내가 힘들어서 학교를 고민했다면 이서가 만 세 살이 되면서부터 내가 힘든 것보다 아이를 위해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서는 특히 말을 잘하고 에너지와 호기심이 많고 눈치가 빠른 편이라 궁금한 것도 많고 하루종일 열정 넘치게 뭔가를 하고 싶어 했다. 둘째 이한이가 너무 어렸고 남편은 바빴다. 아이 둘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면서 이서가 자라나며 필요한 것들을 내가 혼자 채워줄 수 없다는 걸 많이 느꼈다. 보여주지 않던 영상물도 조금씩 규칙을 만들어 허락해 주고 내 성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 이서가 또래나 언니 오빠들과 놀 수 있게 했다. 집에 있는 책은 이서가 줄줄 외워서 보는 사람이 이서가 글자를 읽나 오해할 정도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한국어로 번역해 주며 읽어주기도 하고 틈만 나면 동물원으로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워 드나들었지만 나는 계속 벅찼고 이서는 동생을 먹이고 재우고 돌보는 엄마 곁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아주 길었다.


드디어 오는 9월에 이서도 학교에 간다. 일주일에 이틀이고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한 시에 마치는 짧은 학교지만 이서에게는 큰 도전이다. 한국어로 웬만한 것은 다 알아듣고 표현하는 아이인데 제대로 소통할 수 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고 집을 떠나 엄마나 아빠가 없는 곳에서 이렇게 오래 시간을 보내는 것은 태어나 처음이다. 최근에는 멀리 타 주의 대학교를 가는 언니 이야기를 하며 자기도 열여덟 살이 되면 집 떠나 멀리 가야 해서 학교에 가기 싫단다. 그래서 '그건 열여덟 살이 되면 생각해 보자. 지금은 엄마랑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주고 끝나면 또 데리러 가잖아.'라고 하니 '맞아!'하고 씩 웃으며 뛰어간다. 누구와 헤어져도 슬퍼도 힘들어도 그 감정을 크게 표현하는 아이가 아니라 정말로 그 속에 어느 정도의 두려움이 있는지 모르지만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할 때면 나도 내심 긴장이 된다.


오늘 저녁에도 식사를 준비하는데 이서가 또 냉장고 손잡이에 매달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나는 응, 응, 대답하며 듣다가 말했다. '이서야, 원래 처음에는 겁도 나고 긴장도 되는 거야. 모든 일이 처음에는 그런 거야. 그래도 기대되기도 하지?' 이서는 그렇다고 했다. 아마 다음 주에 학교 방문일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선생님도 만나보면 더 기대하게 될 거다. 이서라면 충분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가야 한다. 실상 나는 이서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네 시간밖에 안 되고 차가 한 대라 그 사이에 남편 라이드도 하고 이서가 마치기 전에 미리 가서 기다려야 하니 그리 여유롭지 않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한이가 있다. 이서가 학교를 가는 것은 나를 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이서를 위한 일이다. 이서는 가서 새로운 공간에서 적응하는 법을 배울 거다. 먹는 것도, 화장실도 모든 것을 혼자 해내는 것도 연습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더 많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방법도 배우고 눈치로 함께하며 놀이에 참여하는 것도 배울 거다. 새로운 노래나 춤, 운동도 배울 거고 무엇보다 엄마 곁에서 조금 떨어져 자기 삶을 살아갈 첫 시작이 될 거다.


어쩌면 이서를 학교에 들여보내고 내가 더 마음 졸일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다녀와서 이서가 가기 싫다며 울면 이서를 재우고 내가 더 많이 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부모와 아이가 그런 시간을 지난다고 들었다. 그래도 이서는 나보다 훨씬 밝고 용감하니까 내가 세 살이었던 때보다 더 잘할 거라 믿는다. 우리 모두 씩씩하게 해낼 수 있을 거다. 우리의 새로운 장이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이 될지 모르고 쓰는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